노무현과 양치기 소년
2004-07-08 (목)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비판신문들을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1년반 전 청와대에 진군한 이래, ‘지도력 부재’와 ‘정책 난맥’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언론, 정확히 말해서 보수적 논조의 신문들에 대해 노씨는 줄곧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곤 했다.
얼마전 주한 외국 대사들을 모아놓고 ‘한국 신문들의 과장 보도’를 비난한 것도 그 중 하나다.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진단한 신문 보도를 거론하면서 ‘한국 신문은 믿을 게 못된다’는 식으로 매도했다. 노씨는 기회가 날 때마다 우리 경제가 올해엔 좀더 나아질 것이고 내년에는 더 개선될 것이라며 신문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과연 대통령과 신문 중 어느 쪽 말이 옳을까? 내가 보기에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를 직시하고 위기는 아니더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자세만 놓고 볼 때, 단연코 위기설에 서 있는 신문들이 옳다는 게 내 판단이다. 노 대통령의 불만은 보수신문들이 공연히 위기감을 퍼뜨리고 있으며, 여기에는 자신과 정부를 흔들려는 악의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문 쪽에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대통령이란 도대체 어떤 자리인가. 국가를 통치함에 있어 모든 가능성을 진단하고 대책을 미리미리 세워 어떤 위기도 사전에 봉쇄하는 자리가 아닌가.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위기는 아니라고 강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렵다는 것’, 그것을 신문들은 경보적 의미로서의 ‘위기’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이 언론의 기능 아닌가.
‘양치기 소년’의 우화를 뒤집어보면 늑대에 물려간 그 소년이야말로 미래의 위험을 예고한 ‘경보 소년’으로 칭찬해 줄 만하다. 소년은 거짓 경보를 발했다는 이유로 불신을 당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결국 늑대가 나타났고 소년과 양떼가 주륙을 당하지 않았는가. 동네 사람들이 좀 더 현명했다면 양치기 소년의 경보를 점검하는 장치, 예컨대 늑대 출현의 위험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양떼 보호견을 늘리는 등 제반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이야기를 현실로 끌고 와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언론이 양치기 소년처럼 경제 위기가 온다고 외칠 때, 국정 책임자(동네 주민)는 그 진위를 가릴 장치를 철저히 만들어 놓을 책임이 있다. 늑대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왜 법석이냐고 화를 낼 게 아니라 뭔가 불길한 낌새는 아닌지 사태를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는 게 국가 정상으로서의 도리인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한두 번 허탕쳤다 해서 양치기 소년을 믿지 않은 게 바로 화근이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가 진로에 어떤 형태든 위기의 싹만 보여도 이를 사전에 도려내는 ‘유비무환’의 자세를 지키는 것이 국정을 담당한 최고 통치자의 기본이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 위기설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의도적 외면이거나 경보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국가 정책의 모든 분야에서 경보 시스템은 살아 움직여야 한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정부는 만사가 태평이요, 비판과 경고는 용납되지 않는다. 미군이 빠져나가도 자주국방 하면 걱정할 게 없다고 낙관한다. 본래 분수를 망각한 자신감은 무능보다 몇 배 더 위험한 법이다.
매사 ‘파란 불‘이라고 노 정권이 우기고 있는 동안 도처에서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이라크에서 한 한국인이 테러범들에 살해된 끔직한 사건의 시작과 종말이 이를 증명한다. 책임부처인 외교부나 국정원은 피랍 사실에 대해 20여일이 지나도록 감감했고 뒤늦게 석방교섭을 벌인다고 법석을 떨었다. 정말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무책임과 무능이다. 한데 외교부의 그런 행태만이 지탄 대상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기관 대부분이 그렇다고 해도 망발이 아니다. 책임감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공무원의 고전적 덕목은 퇴색됐다. 보신과 눈치만이 공직사회에 만연해 있다. 일차적으로 그 책임이 공무원 개인에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게 관리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 국가 공무원으로서의 자신감과 자긍심을 잃었다. 그들의 뇌리엔 3년 반만 지나면 끝날 정권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관리들이란 일하는 동기를 만들어주어야 신이 나서 일한다.
새마을 운동이 불타던 박정희 연대는 그랬다. 한국의 오늘을 만든 견인차로서의 공무원 사회는 그러나 지금 무력감 속에서 복지부동 중이다. 누가 그들에게만 돌을 던질 것인가. 이 지경까지 온 본원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걸 따지고 준엄하게 책임을 묻는 국민이라야 제 정신 차린 국민이다. 과연 우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영모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