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험수위 이른 건물주 횡포

2004-06-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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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배려하는 ‘공생’인식 절실

건물주와 세입자는 대개 ‘비대칭 공생관계’에 놓인다. 특히 요즘처럼 ‘내 장사’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면 건물주의 고자세와 세입자의 저자세가 통례로 굳어진다. “내 건물, 내 땅, 내 맘대로”를 모토인양 내뱉는 일부 독불장군들이 세입자의 속을 빡빡 긁는다. 비즈니스도 인간 관계이다. 특히 비대칭 공생관계에서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배려가 절실하다.

자영업 희망자 쇄도하자 상도의 내 던져
상가 공동관리비 등 받은 뒤 계약불이행
리스 갱신 ‘칼자루’ 쥐고 웃돈 요구 예사


1999년 2월 9일 오후 6시55분 LA한인타운 내 한 사무실에서 한인남자 셋이 총상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피투성이 시신 외에 38구경 반자동 권총과 탄피 14개가 흩어져 있었다. 두 명은 발이 전화선으로 묶여 있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들을 묶은 뒤 살해하고 자살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건물주와 매니저였고 가해자는 이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세입자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간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그 뿌리는 업소운영과 관련한 불협화음이었다. 즉 렌트, 디파짓 등과 관련한 리스분쟁이 화근이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건물주와 입주자의 갈등이 분쟁으로 비화했을 때 예측불허의 사태로 진전될 수 있음을 반증하는 선례이다.
타운 한복판에서 발생한 처형식 살인사건에 커뮤니티가 온통 화들짝 놀랐었다. 한인사회의 상당수가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에 놓여 있어 충격은 더욱 컸다.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터진 것이다. 갈등이 분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참극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입주자의 분노를 자아내는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건물주의 계약불이행이다. 버젓이 계약서에 내용을 집어넣고는 나 몰라라 하는 뻔뻔한 태도이다. 세입자들의 불만은 이렇게 압축된다. “계약서에는 번지레한 문구들을 집어넣어 상가를 최상의 환경으로 관리하겠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정작 장사를 해보니 건물주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건물주의 돌변에 그치지 않는다. 이 조항으로 인해 세입자들이 부담한 돈이 아무런 쓸모 없이 그저 건물주의 주머니 돈이 돼버린 데 있다. 계약조건에 따라 세입자들은 건물주가 내야할 재산세, 보험료, 상가 관리비 등을 부담하기도 한다. 타운 홈 주민들이 외벽 페인트, 지붕 손질, 수영장 및 잔디관리, 청소 등 여러 가지 환경미화를 위해 관리사무실에 매달 내는 것과 흡사하다.
상가 세입자들도 이와 같은 명목으로 기꺼이 부담을 진다. 업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렌트가 2,000달러인 경우 500달러 정도를 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추산이다. 업소들이 이름이 총망라된 ‘폴 사인’을 정비하고 청소를 잘 해 고객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데 이 돈을 써야 하는데 돈만 받아놓고 눈을 감는 건물주들이 있다고 한다.
취객이 상가 한 귀퉁이에 토한 것을 며칠째 방치하는 건물주가 있는가 하면, 주차장이 침침해 조명을 밝게 해달라고 수 차례 요구해도 들은 척 만 척하는 건물주가 있다. 고객이 물건을 사고 내는 판매세를 ‘과외수입’으로 여겨 쓱싹하는 업소와 다를 바 없다. 남의 돈을 사취하는 행위이다.
업소의 성격과 주차장 용도가 달라 장사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주차장을 증설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뻔뻔함도 예사이다. 그나마 여유 없는 주차장 한쪽에 또 다른 점포를 지어 렌트 수입을 늘이려는 건물주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결국 근근히 장사하는 세입자들만 죽어난다. 주차장이 비좁아 손님의 발길이 하나둘 끊기는데 비싼 렌트는 꼬박꼬박 내야하니 답답 증세를 보일 만도 하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렌트를 왕창 올리는 건물주가 있다. 과거엔 연 3%정도였는데 요즘엔 턱없이 올라간다. 건물주는 “싫으면 나가라”고 최후통첩을 낸다. 새로 들어올 사람이 줄 서 있다는 것이다. 세입자의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렌트 대폭인상을 감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년간 잘 키워놓은 업소를 다른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받은 뒤 일정 기간 쉬려던 한 세입자는 영악한 건물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을 안 건물주가 리스계약을 갱신해주지 않고 나가라고 한 것이다. 업주의 ‘꿈’은 깨지고 말았는데 더욱 울화통 터지는 일은 건물주가 그 업소를 직접 운영하더라는 것이다. 세입자가 땀흘려 거둔 열매를 건물주가 냉큼 따먹은 셈이다.
신규 계약 또는 연장 시 건물주가 요구하는 웃돈인 키머니도 세입자를 골탕먹인다. 목이 좋은 상가의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관례보다 최대 10배의 키머니를 요구하기도 한다. ‘렌트 40% 인상, 키머니 6만 달러’라는 통보를 받은 세입자의 속앓이를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6만 달러의 키머니를 요구한 지 며칠도 안돼 건물주가 1만 달러를 더 요구하자 “몇 년간 한푼 두 푼 벌어 건물주에게 바치는 꼴”이라는 세입자의 볼멘소리는 특정 지역이나 업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건물 공사비를 세입자에게 덮어씌우는가 하면 상가가 완성되기도 전에 몇 달치 시큐리티 디파짓을 요구하는 건물주도 있다. 가게문을 열기도 전에 목돈을 내야 하는 세입자는 쓸개즙을 마시는 기분이다.
업소 내부 설비공사에서도 건물주의 부당한 입김이 작용한다. 건물주가 지정한 시공업체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가격 흥정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견적이 다른 업체들보다 훨씬 비싸게 나와도 냉가슴일 뿐이다.
그 동안 한국에서 뭉텅이 돈이 흘러 들어온 덕에 비즈니스 렌트가 부쩍 오른 것은 일면 경제논리의 결과이다. 이민자가 늘고 이들이 소규모 자영업을 계획하고 있어 비즈니스 수요는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도가 있고 상식이 있다. 지나치면 모두에게 해를 준다. 건물주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세입자는 물론 자신에게도 부메랑이 돼 돌아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내 건물, 내 땅이니 간섭 말라”고 한다면 언젠가는 그 몰상식으로 인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건물주와 세입자는 공생관계이다. 룰을 지키고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관계이다. 특히 ‘강자’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을 때 발전하는 관계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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