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레이건에 대한 평가 변화

2004-06-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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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들어 두 번째로 위대한 대통령이 죽자 그를 조롱하고 악마시 해 온 리버럴 진영은 고민에 빠진다. 8년간 그들이 적대시 해왔건만 미국민 절대 다수가 사랑하고 역사의 승자가 된 인물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들이 발견한 해답은 레인건의 미소와 성격, 낙관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낙관주의’는 레이건이 추구해온 모든 것을 비하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낙관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이념적 비전이나 이를 실현할 정책적 수단, 정치적 용기가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레이건은 베트남 전 이후 미국이 조롱받던 시절 미국의 위대함과 선함을 믿었기에 낙천적일 수 있었다. 그는 옳았다. 그러나 재임기간 그의 낙천주의는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생각 없는 바보의 웃음이라는 것이었다. 워싱턴의 기성 정치인들은 그를 원시인일 뿐 아니라 위험한 인물로 간주했다.
80년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그가 전쟁광으로 비난받았는지 모를 것이다. 80년대 초 서방은 핵 히스테리에 빠졌었다. 핵무기를 동결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일었고 지금 부시 대통령이 그렇듯 레이건이야말로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런 사실을 지금 리버럴들은 잊고 싶어한다. 레이건 비판자들은 핵의 논리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대규모 평화시위에도 불구하고 소련에 대한 강경노선을 고수, 소련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유럽에서 철수하게 만들었다. 그처럼 빠른 시일 내 역사에 의해 올바름이 증명된 대통령은 거의 없다. 퇴임 후 10개월만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그의 강경노선으로 미국은 냉전에서 이겼고 새로운 평화가 찾아왔다.
이런 성공은 그의 정책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던 비판자들에게는 창피한 일이다. 그들은 이제 그의 미소를 칭찬함으로써 이를 얼버무리려 하고 있다. 죽은 자에게 좋은 말을 하는 것은 관행이지만 이들이 레이건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찰스 크라우트해머/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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