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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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보다 효과적인 전략

2004-06-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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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행정부 법률 고문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고문을 금지하던 미국의 오랜 원칙을 도외시하는 메모를 기록했던 것으로 보도가 되고 있다. 그런 메모가 있었기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관타나모에서 그런 끔찍스런 일들이 가능했다.

나는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위상, 혹은 우리 스스로가 보는 우리를 깎아 내리는 데 그런 결정 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고 본다. 학대를 인가할 때 그 부식 효과가 얼마나 깊은 지는 프랑스를 보면 잘 알수 있다.
프랑스는 알제리에서의 고문 사용으로 인해 그들의 명예에 남은 오점을 씻느라 아직도 애를 쓰고 있다. 프랑스 군인들은 베트남에서 고문을 받았었고, 고문에 못 이겨 베트남 민주동맹 측에 중요한 정보를 누설하는 일들이 간혹 생겼다.

프랑스가 똑같은 전술을 알제리에서 썼던 것이다. 고문 사용으로 프랑스는 알지에 전투에서 승리를 했을 지는 모르지만 대신 알제리를 빼앗겼다.
1951년 보조군인 장교로 중앙정보국(C.I.A)에서 훈련을 받을 때 교관들은 냉전에서 이기려면 불은 불로 싸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하면 공산주의 적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대답은 입 다물고 잠자코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CIA는 베트남에서 고문을 철저히 금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1970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에서의 경험으로 내가 배운 것은 죄수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면 항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자주 죄수들로부터 가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베트남 측 관계 당국으로부터 심하게 폭력을 당한 죄수들일수록 미국인들의 동정적 대우에 반응을 보여왔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에서 CIA 지국장을 할 때 나는 한국 중앙정보부의 고문 관행에 대해 침묵해야 할지 항의의 행동을 취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섰었다. 1973년 8월 한국 정보요원들은 당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전대통령을 도쿄에서 납치했다. 납치 사실이 알려지자 대학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중앙정부보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한 교수를 시위 주동 협의로 체포했고 이를 부인하던 교수는 고문의 결과로, 혹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창문으로 뛰어 내림으로써 사망을 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CIA 본부에 즉각 보고를 하고 한국 정부측에 항의를 하도록 허락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워싱턴의 내 보스는 “한국민들을 한국민들로부터 구하려는 일은 그만 두라. 그건 네 일이 아니다. 사실만 보고하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때 나는 CIA 재직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명령을 어겼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찾아가 중앙정보부가 대북 문제는 내버려두고 국내 반정부 세력 진압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같이 일하기 어렵다고 항의했다.
그리고 1주일 후 막강하던 중앙정보부장이 해임되었다. 나는 CIA 현역 직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할 때마다 CIA 근무 중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일로 이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똑같이 하라고 강조한다. 몇 달전 나는 그런 내 강연에 감사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당시 CIA 국장이던 조지 테넷이 보낸 편지였다.

도널드 그렉/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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