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 칼럼] 은퇴를 앞두고...

2004-06-1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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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교사

누가 나에게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행히 그 하나 밖에 없는 재주를 살려 교사가 되어 교단에서 가르치는 일을 한국에서 8년, 뉴욕에서 24년 도합 32년을 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항상 즐거웠다. 그것은 24년간 한인 이민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같은 민족을 돕는다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가르쳤기에 덤으로 받은 보상이었다. 항상 즐겁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큰딸도 교사가 되었으니 우리 모녀를 교사의 길로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크게 감사드린다.


32년을 마감하며 금년 6월에 은퇴한다. 플러싱의 189 중학교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거쳐간 학생들 중 더러는 교사의 부덕으로 혹은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해 혜택을 못 받은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학생에게는 이 자리를 빌어 학생과 학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1980년 가을, 뉴욕시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일정한 교실도 없었고 학교 건물 자투리 방에서, 어떤 해는 두 개의 가사실 중간에서 학생들이 음식을 만드는 소리, 빨래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교실을 갖게 되고부터는 창가에 늘 화초를 기르며 지냈다. 화초들을 아름답고 싱싱하게 가꾸듯 학생들에게도 열심히 물을 대주고, 양분도 주고, 햇볕 쪽으로 돌려놓아 주었다. 학생들로부터 쓸모 없는 가지를 쳐내주고 약한 부분은 붙들어 매주며 점심을 거르기도 했다. 다시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흡족해서 시장한 줄도 몰랐다.

또 학생들에게 한국의 얼과 자신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고 또 한국을 모르는 뉴요커들에게 외교사절도 할 겸해서 고전무용, 태권도와 격파시범, 또 한국민요를 합창할 수 있게 가르치면서 해마다 교내 축제 무대를 찬란히 꾸며왔다. 한국음식도 소개하고 스승의 날을 학교에 제정하여 타민족에게 한국인의 교육열을 과시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뚜렷한 목적의식을 고취시키고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며, 스스로에게도 충실하고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젊은이로 키우기 위해 잔소리도 서슴치 않았다.

학생들이 훌륭한 어른이 되어서 가정을 잘 일궈나가는 것을 보면 이들에게 바쳐진 나의 지나간 숱한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 내가 은퇴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제는 이 젊은이들에게 교사의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은퇴 후에는 그동안 미루었던 취미 생활도 하고 싶고 자원봉사도 할 것이다. 매주 토요 한국학교에 다니는 큰 손녀손자들에게 한글도 가르치며 새롭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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