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약속의 땅’ 미국

2004-06-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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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사망과 관련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낙관주의자’다. 레이건은 기질적으로 희망에 찬 인물이었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레이건의 낙관주의는 성격만이 아니라 개인적 확신에서 나왔다.
레이건의 낙관주의를 이해하려면 레이건 이전 미국 보수주의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약함과 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한계와 인류 역사의 비극적 면을 강조한 힘없는 사상가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사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미국의 정신적 재난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느꼈다.
위테이커 체임버스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민주 진영에 합류했을 때 그는 역사의 지는 편에 가담했다고 믿었다. ‘사상은 결과를 낳는다’는 책을 쓴 리처드 위버는 미국 사회가 “끔찍한 추락”을 하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보수파 사상가인 러셀 커크는 현대 사회를 묘사하면서 황량하고 추악하며 천박하고 기형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보수파들은 오랜 관습과 제도가 무너져 가고 있으며 안정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커크는 “영혼 내 질서와 사회 질서의 회복이 금세기가 해야 이룩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레이건은 공산주의 등에 관해서는 보수파들과 의견을 같이 했지만 보수주의를 과거에서 미래 지향으로 바꿔놓았다. 1952년 윌리엄스 우즈 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그는 “나는 항상 미국을 ‘약속의 땅’이라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레이건은 미국을 자유의 제국을 이루기 위한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유의 승리를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믿었다. 그는 현대 미국 문화를 그 기쁜 결과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소련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나의 소련에 대한 미국 정책은 간단하다. 우리가 이기고 그들이 지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다른 보수파와 달리 그는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소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민자를 감싸 안았고 기업가 정신과 부의 창출을 노래한 조지 길더와 줄리언 사이먼 같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레이건은 겉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였지만 속은 강인했다. 1976년에는 현직 공화당 대통령에 도전했으며 1980년에는 카터를 인상 찡그린 패배주의자로 몰았다. 대통령 재직 중에는 권위주의적 정권에게 민주화 압력을 가했다.
한 때는 리버럴들이 진보를 부르짖었다. 이를 바꿔놓은 것은 레이건이다. 이제는 공화당이 이상 사회를 주창하고 민주당은 현상 유지를 고집한다. 레이건은 미국을 영구적인 혁명적 힘으로 여겼다. 레이건이 시작한 미국의 역할에 대한 토론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데이빗 브룩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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