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라크의 역사 교훈

2004-06-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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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포성은 멈췄다. 전 세계가 평화롭다”라고 맥아더는 1945년 9월 말했다. 지난 주 워싱턴 제2차 대전 기념비에 새겨진 이 말을 보고 그 낙관주의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오래 가지 않았다. 독일과 일본에 평화를 가져오기는 했으나 이들 나라는 잿더미로 변했다. 중국과 그리스에서는 게릴라전이 40년대 말까지 계속됐으며 프랑스에서는 공산 정권이 거의 들어설 뻔했다. 인도와 팔레스타인, 인도차이나, 미얀마에서는 식민 전쟁이 이어졌다.
최근 나는 뛰어난 영국 역사가 존 키건이 쓴 에세이를 읽었다(런던 데일리 텔레그래프 6월 1일자). 그는 여기서 전쟁이 깨끗하고 완전히 끝난다는 통념이 잘못된 것임을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언론은 이라크 사태가 잘 해결될 것이라는 독자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자그마한 나쁜 뉴스도 빼놓지 보도한다”고 적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새로운 이라크로 옮겨가는 이행 과정이 어렵고 피를 흘려야 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예견된 것인데도 비판자들은 이를 시작한 부시와 블레어를 비난하는 구실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키건은 이라크 비판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역사를 알고 있다. 이 기사가 나가자마자 그의 예측은 들어맞고 있다. 비관론자들이 이라크가 혼란에 빠져 있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가운데 인종별로나 지역별로 잘 균형 잡힌 임시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 정도 뉴스로는 패배주의자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온건 시아파가 총리로 임명되자 언론에서는 그가 CIA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자격이 없는 인물이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사담의 박해를 받던 망명자들이 누구한테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을까. 프랑스? 독일? 러시아? 코피 아난? 조지 소로스? 알라위가 CIA와 협력한 것은 사담 독재 정권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 기도와 관해서다(CIA 무능으로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또 비판자들은 이번 임시 정부는 이라크 통치위원회 멤버들이 자리를 바꾼 데 불과하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36명의 임시 정부 각료 중 통치위 출신은 4명뿐이다. 임시 정부는 망명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다는 주장은 우스꽝스럽다. 30년 동안 반대하면 고문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스탈린 식 독재 정치가 펼쳐져 온 이라크 내에서 반정부 지도자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재미있는 것은 이들 비판자들 가운데 전적으로 망명자들로 이뤄진 PLO를 팔레스타인 합법정부로 인정한 오슬로 평화협정을 반대한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테러리스인 아라파트는 혁명가라는 이유로 서방 지식인의 찬사를 받지만 사담 하수인의 도끼 공격을 받으며 가까스로 살아난 임정 총리는 “망명자”로 천대받는다. 더군다나 이들 임시 정부가 하는 일은 차기 선거를 준비하고 7개월 후 사라지는 것이다.
이라크가 지금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후 상황은 늘 그렇다. 전체주의 정권이 무너져 권력의 공백이 생긴 때는 더욱 그렇다. 어려움과 위험이 남아 있으며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이라크의 변화는 진행중이며 그 첫 발걸음은 놓여졌다.

찰스 크라우트해머/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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