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기 사건 왜 끊이지 않나

2004-05-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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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꾐’에 홀린 과욕,‘덫’에 눈먼 과신이 화근

환심 노린 특별 대우는 ‘낚시 밥’
‘묻지마 투자’는 파국으로 가는 길
귀동냥·풍문 대신 정밀조사 필수

C+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사기 행각에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재력가 등 수십 명이 농락 당해 수천만 달러를 날렸다. 크고 작은 사기사건들이 시간차 공격을 할 정도로 빈발하는 게 우리의 풍속도이다. 언제까지 사기꾼의 농간에 당하고만 있어야 하느냐는 고함이 터져 나올 만도 하다.


지난해 횡재를 꿈꾸다 일장춘몽의 허망한 피해자가 된 한인이 있다. 암살 당한 나이지리아 장군의 미망인을 자처하는 여성의 전화가 시발이었다. 숨겨 둔 거액을 국외로 빼내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 계좌를 알려주면 후하게 사례하겠다는 제안에 끌려 계좌번호를 알려주었으나, 사기꾼은 사례는 고사하고 계좌에 남아 있던 돈마저 인출해 갔다. 거액이 거저 굴러 들어온다면 이성을 붙들어매기가 힘들다. 이는 사기꾼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최적의 토양’이다.
저금리 시대에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접근하는 ‘꾼’에 홀리기 십상이다. 2-3%가 고작인데 20-30% 금리를 확약한다면 덥석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최근 대형사기 사건의 진원인 C+ 캐피탈 매니지먼트가 사용한 수법이다. 또한 “경품에 당첨됐다”고 축하하며 붕 띄워놓고는 은근슬쩍 신분확인용 개인정보를 캐물어 재정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비상식적인 수익이나 공짜를 원하지 않더라도, 틈새만 보이면 파고드는 사기의 마수로부터 온전하기는 쉽지 않다. 영어가 서툰 신규 이민자는 언제든지 ‘밥’이 될 수 있다. 한 때 간호사가 상종가를 기록하면서 시험 응시자가 늘자 이들을 상대로 한 사기가 잦았다. 시험에 합격해도 언어 장벽으로 병원에 취직하기가 어려워지자 ‘일자리 보장’을 미끼로 1,000-5,000달러를 챙기고 입을 싹 닦았다. 취업 보장 약속은 애당초 지킬 수 없는 거짓이었다.
상당수 한인들의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합법적인 체류신분 확보이다. E2(투자)비자를 희망하는 한인들에게 변호사를 사칭해 접근한 한 사기꾼은 자신이 운영하는 가구점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E2비자를 받게 해주겠다고 사탕발림 말을 해 1인당 수만 달러씩 가로챘다.
식당 업주와 짜고 영주권 희망자들을 식당 종업원으로 위장해 노동허가를 신청한 뒤 1-5만 달러를 사취한 영리한 사기꾼도 있다. 목마른 사람을 유인한 뒤 대장균이 득실거리는 물을 약수로 속여 판 셈이다. 마음은 급하고 물정은 모르는 사람들을 ‘한탕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사기는 ‘바보들’만 당하는 게 아니다. 투자에 관한 한 내로라 하는 사람들도 먹이를 고르는 매 앞에는 병아리에 불과하다. 고단수의 유혹에 평정을 유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돈 있다고 투자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소문을 퍼뜨려 돈 싸들고 찾아 와 “투자하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하게’ 만드는 술책이다.
C+ 캐피탈 매니지먼트가 그 전형이다. 투자액은 100만 달러가 기본이다. 그런데 평소 자신이 운영하던 업소에 자주 찾아 온 ‘사기꾼’과 수년간 교분을 쌓아온 한 한인은 사정사정해 60만 달러투자에 성공했다며 좋아하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전세기를 대절해 투자자들을 라스베가스로 안내하고 호텔방도 펜트하우스를 예약했으며 도박도 일반인들과 차별하기 위해 2층 특별섹션에서 하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다. 투자자들에게서 “우리는 특별한 존재”라는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서다. 소위 ‘하이 소사이어티’ 선전으로 입이 떡 벌어지게 한 것이다.
사기꾼들이 ‘먹이 사냥’에 철칙으로 삼는 것은 ‘마음 사로잡기’이다. C+ 캐피탈 매니지먼트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왕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이들의 자녀를 채용해 봉급을 많이 주고 업무도 잘 가르쳐 주면서 안심시켰다. 투자자들은 “우리 아들들을 채용한 회사가 우리에게 사기를 치겠느냐”며 마음을 놓았다.
자바시장의 큰손인 이들이 움직였고, 초창기 꼬박꼬박 수익금을 주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출신 사업가 20여명이 앞다퉈 투자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결과는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었다. 사기꾼은 완전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큰손들’의 환심을 샀다. 제갈공명이 남만의 왕인 맹획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를 7번이나 사로잡고도 처단하지 않고 풀어준 것과 유사할 정도로 치밀한 계략이다.
맹신과 방심은 사기꾼이 쳐 놓은 그물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게 한다. 얼마 전 계 파동으로 100만 달러가 공중에 떠버린 사건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계주는 계원 36명을 3개조 나눠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게 연막을 쳐놓고, 4차례나 자기가 계를 타고는 “다른 사람이 탔다”고 속인 뒤 한국으로 도주했다. 계주는 한술 더 떠 계원들에게서 따로 돈을 빌린 뒤 “계돈으로 대신 내주겠다”고 해놓고 사라졌다. 계원들은 계돈과 빌려준 돈 모두를 날렸다.
무턱대고 보내는 신뢰는 금전적 심적 상처로 되돌아온다. 이민을 갓 온 한 한인은 같은 동포라면 믿을 수 있다고 여겨 한인세일즈맨에게서 97년형 포드 자동차를 8,600달러에 구입하고 3,000달러 다운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날아온 편지에 “8,400달러 더 내라”고 써 있었다. 연유를 묻는 질문에, 크레딧이 없어 금리가 뛰었다는 게 답변이었다. 믿고 찾은 고객의 등에 비수를 꽂은 셈이다.
아예 겁주면서 사기치는 뻔뻔한 부류도 있다. 한 한인은 관광비자로 입국 후 취업이민 신청에 8만 달러 지불했으나 3년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라서 일의 진행을 채근했다. 그러자 “신고하면 추방시키겠다”며 신분상 약점을 들먹였다.
‘배 째라’식의 막무가내도 있다. 리커 라이선스 취득 착수금 명목으로 5,000-2만 달러를 챙긴 뒤, 당국의 반대가 심해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나몰라라한다. 게다가 중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다. 시간과 돈을 버린 의뢰인만 골탕을 먹는 꼴이다.
LA는 사기 토양이 기름지다. 어디서 왔는지 여기저기서 검은 돈이 둥둥 떠다닌다. 이젠 한인사회 경제규모가 커져 웬만한 사기사건으로 휘청거리지는 않겠지만 건실한 성장을 저해하는 독소임엔 틀림없다.
사기꾼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사후약방문이다.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사기꾼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과욕을 삼가고 사기꾼이 놓은 덫에 걸리지 않도록 앞뒤를 잘 살피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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