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는 같은 것을 반복한다. 일부 이상주의적 환상가들은 다른 나라에서 악을 제거하고 장밋빛 미래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은 중도에 그만두기 일쑤이다. 그들은 준비가 덜 된 탓에 자신들이 직면하는 일들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면 중도에 새로운 임무를 창출한다. 뒤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급한 나머지 이상주의를 버리고 실용주의적 노선을 택한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간직해 온 유토피아를 건설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진출하기 전의 상황보다는 개선된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 영국 식민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의욕만 앞세웠지 현실의 장애물을 극복한 대안을 적절히 강구하지 않는 무모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점차 이들은 현실에 적응했다. 무작정 서부로 발길을 내딛은 서부개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도 이러한 패턴에 변화가 없다. 첨단산업 시대에 사는 우리들도 이러한 과도한 낙관주의의 함정에 종종 빠지고 만다. 희망은 절망을 낳고, 적어도 이라크에 관한 한 우리는 지금 절망의 순간에 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필요한 것은 자성이다. 환상을 버리고 현실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의 1인자가 피살됐지만 미국은 예정대로 정권이양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후세인의 바타당원들에게 치안을 맡겼다. 시아파 과격 지도자 알 사드르와 싸우면서도 동시에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 분명 변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선거 철이지만 누구도 미국이 이라크에서 실패하길 바라지 않는다.
데이빗 브룩스/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