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를 믿어달라”

2004-05-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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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포로학대 스캔들이 결국 백일하에 드러날 것을 생각 못했는가. 미국인 대다수는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 대다수도 그러하다. 미국이 이 부분에서 다른 나라보다 앞서는 것은 미국 사회의 개방과 균형의 전통 때문 이다.
부시는 집권하자마자 “우리를 믿어달라”고 했다. 닉슨 행정부 이래로 이런 태도는 처음이다. 감독 받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서도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달라고 한 것과 같다. 의회는 이러한 요구에 끌려갔고 결국 이번 스캔들이 터졌다. 도덕적 재앙이다.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도 “우리를 믿어달라”며 소위 애국법 통과를 밀어붙였고 지난 2년반 동안 1,000여명을 은밀히 구금했다. 부시는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우리를 믿어달라”고 했다. 직접적인 위협도 없고 대량살상무기도 없으며 알 카에다와의 연계도 없는데 말이다.
브레머 이라크 행정관도 그 같은 말을 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2002년 초 미국 시민까지 적 전투병으로 규정하고 제네바 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우리를 믿어 달라”고 했다. 이번 스캔들에서 군 고위지휘관이 고문을 명령했을까? 이는 명령과 고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군 지휘관들은 포로들을 심문할 때 주요한 정보를 캐낼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라고 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럼스펠드는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체니 부통령은 그를 미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국방장관이라고 치켜세우고 국민들은 이 스캔들을 더 이상 문제삼지 말고 럼스펠드가 직분을 다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또 “우리를 믿어달라”고 한다.

폴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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