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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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문제다

2004-05-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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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말했다.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를 국방부가 발견해 자체 조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미군이 저지른 것은 학대이지 고문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3월에 작성된 진상 보고서를 왜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보고서가 명령 체계를 거쳐 올라 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마이어스는 목숨을 걸고 국가를 방어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총책임자다. 미국을 전 세계적으로 망신시키고 미군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사건이 발생한 지금 그는 꽁무니에 불이 붙은 듯 뛰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이럴 수 있는가.
럼스펠드가 진심으로 시스템이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마이어스가 보고서가 올라오기만을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다면 두 사람은 모두 군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이 두 사람만 문책해 끝날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은 부시 대통령이다. 부시가 사전에 포로 학대 사실을 알았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문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과 관타나모 기지에서 포로 학대 소식이 흘러나왔을 때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소수의 문제로 돌리고 올챙이 몇 명을 처벌함으로써 마무리짓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을 것이다. 이런 일을 저지른 자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하급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세계인들은 이 범죄가 우리 정부와 미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적들로 하여금 우리를 비웃을 수 있는 명분을 줬다. 지난 주 부시는 “더 이상 이라크에는 고문실도 집단 묘지도 없다”고 말했다. 권력자의 인권 침해를 막자는 것이 우리가 전쟁을 한 이유다. 우리는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를 실천해야 한다.

E. J. 디온/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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