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 버블 터지나

2004-05-06 (목)
크게 작게
무작정 뛰어들기보다 경기둔화 대비할 때

지난 4년 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계 각국은 경기 침체를 겪었으나 중국만은 예외였다. 중국은 이 기간 동안 ‘세계의 공장’ 을 자임하며 매년 7~8%에 달하는 고속 성장을 이뤄왔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던 중국이 최근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경기가 과연 연착륙할 수 있을지 진단해 본다.


LA 다운타운 한인상가 중국 의존도 절대적
당국 경기 연착륙 시도 성공 보장 없어
통계조작·부정부패 정확한 진단 어렵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퓰리처상을 3번이나 받은 토마스 프리드먼은 최근 “후진타오 주석이 중국 경제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일본, 미국, 호주, 대만, 말레이시아, 러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유럽 연합 지도자들은 기도해야 한다”고 쓴 일이 있다.
여기에 LA 다운타운에서 장사를 하는 한인 의류업자와 무역인들을 포함시켜도 될 것이다. 중국 상품이 한인 의류 상가에 등장한지는 오래되지만 요즘은 거의 중국 물건 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인들의 중국 의존도는 크다. 최근 수년 사이에는 아예 의류 소매업을 포기하고 팔릴 만한 물건을 중국에서 골라 한인 상인들에게 소개해 주고 커미션을 받는 전문 브로커까지 생겨났다. 이들 중에는 소개비만으로도 1년에 1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이들도 있다.
중국 붐을 타고 단순히 물건을 사오는 단계를 지나 싼 임금을 이용, 중국에 공장을 세우는 한인들도 계속 늘고 공장 종류도 의류에서 잡화, 장난감, 가발, 페인트 등 다양해지고 있다. 중국 투자 붐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작년 한 해 각국이 중국에 쏟아 부은 돈은 500억 달러다. 인구 10억으로 중국 다음의 대국인 인도는 그 1/10에 불과하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 수출국으로 떠올랐으며 대다수 한국인들은 장차 미국보다 중국이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 투자 붐은 “지금 중국 시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앞으로 희망이 없다”는 식의 다급함까지 엿보게 할 정도로 뜨거웠다. 이처럼 너도나도 중국으로 투자가들이 몰려든 것은 엄청난 규모의 내수 시장, 중국 정부의 적극적 투자 유치, 싼 임금, 실제보다 평가 절하된 위안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돈의 상당 부분은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중국이 21세기의 첨단 도시로 키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샹하이의 푸동 지구 일대는 초현대식 건물이 늘어서 있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텅 비어 있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중국 투자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비례해 중국 내 비즈니스 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우선 인건비가 10여 년 전에 비해 크게 올랐을 뿐 아니라 환경보호 정책에 따라 유해 물질 배출 업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공장 당 2,5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가발 공장을 중국에 3개 가지고 있는 정진철 전 한인 무역협회장은 “임금이 너무 오르고 규제가 까다로워져 공장을 내륙으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일반 노동자 임금은 10년 전 월 40달러에서 80달러, 매니저 급은 이제 1,000달러 이상 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식을 줄 모를 것 같던 고공 행진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웬자바오 중국 총리는 더 이상의 경기 과열을 위험하다는 판단 아래 긴축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바 있으며 인민 은행은 이에 따라 지난 주 긴급 회의를 열고 이번 주부터 1년 단기 융자에 대한 금리를 올리기로 결정했다.
중국 당국은 앞으로는 허가된 업종에만 융자를 해주도록 했으며 자동차, 알루미늄, 시멘트, 부동산, 강철 등 과열 업종에는 대출을 규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력, 수도, 교통 등 정부가 보기에 필요한 일부 업종에 대한 융자는 종전대로 계속된다.
정부의 긴축 정책이 성공을 거둘 경우 경기가 둔화될 것은 분명하다. 이미 많은 투자가들은 이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중국에서 페인트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홍명기 듀라코트 회장은 “경기 둔화에 대비해 사업 확장을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긴축 조치를 취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나 문제는 경기가 항상 정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도 정부 당국이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긴축 정책을 펴다가 그렇게 됐다.
특히 중국의 경우 각종 수치가 믿을 수 없다는 점이 경기 안착을 위한 노력을 힘들게 하고 있다. 주룽지 전 중국 총리는 “통계 조작이 만연돼 있다”고 개탄한 적이 있다. 중앙 정부가 정한 경제 성장률에 맞추기 위해 지방 정부는 숫자를 조작하는 것이 보통이고 공기업 장부의 2/3는 엉터리라는 것이다.
중국 관리들 사이에 만연된 부패 또한 문제 파악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중국에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관시’와 뇌물이 없이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장을 세우던 계약을 따내던 협상이 어느 정도 진전된 다음에는 “우리 도시 발전을 위해 얼마를 내놓으라”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중앙 정부에서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캠페인을 벌이지만 사법부의 독립이나 법치주의, 언론의 자유가 확립돼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담합하는 것을 낱낱이 밝혀내기는 불가능한 형편이다.
중국의 긴축 정책과 함께 예상되는 위안화 절상도 관심거리다. 중국은 1995년부터 위안화를 달러 당 8.28위안으로 고정시켜 놓고 있다. 중국으로 돈을 가져오는 투자가는 이를 반드시 위안화로 바꾸어야 한다. 이 바람에 중국내 통화량은 연 20%씩 늘어나고 있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위안화를 절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위안화가 절상될 경우 달러화를 주고 중국 물품을 사와야 하는 한인 의류업자들은 그만큼 가격 인상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러나 다운타운의 한인업자들은 “위안화가 다소 오르더라도 현재로서는 중국 이외의 곳에서 그 정도 가격에 그만한 품질의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사실상 발이 묶여 있음을 시인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단계까지 중국의 성장은 낙관해도 좋다. 그러나 과거 예를 보면 급성장하는 경제는 거의 반드시 버블 붕괴 과정을 거친다. 18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고 20세기 들어서는 미국과 일본이 이를 경험했다. 오랜 성장은 항상 방만한 투자와 낭비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큰돈을 벌겠다는 꿈을 안고 너도나도 뛰어들기보다는 중국 버블이 터질 경우 일어날 파장에 대비하는 것이 한인 비즈니스 인들이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라 생각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