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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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과 한인회장

2004-05-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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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에 평생을 바친 베트남민주공화국 초대대통령 호치민은 국민과의 혼연일체를 실천한 드문 지도자였다. 바딘 광장 근처에 있는 대통령 궁의 마당 한켠에 원두막처럼 지은 누추한 집이 그의 집무실 겸 숙소였다.
1960년 대 중반 베트남 주민의 삶은 영 말이 아니었다. 농민들이 전쟁터로 나가다 보니 농사지을 사람이 태부족이었다. 먹을 쌀이 턱없이 모자라 대량 아사 직전이었다. 전시 체제로 공장들은 전쟁용품을 만들어 대느라 다른 생필품도 품귀현상을 빚었다. 다행히 중국의 대규모 쌀 지원으로 연명할 수 있었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도시들은 미군기 공습의 타켓이었다. 호치민은 도시 주민들을 변두리로 대피시켰고 전국 곳곳에 방공호를 파도록 했다. 포탄과 총알을 피할 참호의 길이만 해도 총 3만 마일에 이르고 대부분 1인용인 방공호는 2,000만 개에 달했다. 하지만 허술한 이들 임시대피소가 주민의 생명을 철벽처럼 지켜주지는 못했다.
호치민은 조국의 독립과 통일의 험로를 함께 하다 목숨을 잃고 모진 고생을 한 국민들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도 잠시의 편안함을 허용하지 않았다. ‘원두막’에서 먹고 자며 국사를 보았다. 70대 중반의 고령이라서 주위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가 타계한 지 한 세대가 지났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과거 호치민의 월맹군과 적대관계에 있던 월남 출신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호치민의 이념과 전술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베트남 전문가인 윌리엄 뒤커의 ‘Ho Chi Minh: A Life’에 줄줄이 등장하는 인간 호치민의 모습은 공동체와 함께 하는 리더십의 전형이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계속 죽는데도 유유히 휴가를 떠난 조지 부시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재충전을 위해 필요하다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서민을 대변하겠다면서 머리 한번 손질하는 데 1,000달러 이상을 쓴 민주당 대선 후보 잔 케리도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한인회장은 나라의 지도자도 권력을 지닌 정치인도 아니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나마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자리다. 그리고 이젠 명실상부한 대표로 거듭나야 하는 자리다. 커뮤니티와 유리된 채 따로 움직이는 한인회는 과거사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다. ‘공동체와 함께 호흡하는 한인회장’은 커뮤니티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일인데도 나서고 싶지 않아 외면한다면 결격이다. ‘관심’을 가까이 하고 ‘무관심’을 멀리해야 한다.
신보주의자의 핵심인물로 이라크 공격을 주도한 폴 울포비츠 국방부 부장관이 개전 1주년을 맞아 연방하원에서 전황을 브리핑했다. 미군 사망자 수를 묻는 한 의원에게 울포비츠는 전투 중 숨진 350명을 포함해 500명 정도라고 답변했다. 국방부 통계는 당시 전투 중 사망자가 535명이고 전체 전사자는 738명으로 돼 있다. 두 항목에서 약 200명씩의 큰 편차를 보인다. ‘수만 명이나 수천 명 중 200명 오차’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틀려도 너무 틀렸다.
미군을 ‘애국자’ ‘영웅’으로 치켜올리던 그가 몇 명의 영웅이 전쟁터에서 산화했는지 모르고 있다. 진정 젊은 죽음들을 애석하게 여기는지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전쟁을 주도해 놓고 전사자들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커뮤니티 구석구석을 누비며 현안과 그 문제점을 파악하고 시정방안 강구에 골머리를 앓아야 할 한인회장이 절대로 따라해선 안 될 무관심의 극치다.
거대담론을 다루는 정치지도자와 자잘한 일들과 씨름해야할 한인회장을 저울질하는 데는 어폐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두들 크든 작든 공동체를 위해 나섰고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진력해야 한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한인회장 당선자는 제대로 된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커뮤니티와 함께 하려는 초심을 흩뜨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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