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샤토네프 뒤빠프(Chateauneuf-du-Pape)

2012-06-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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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바스티드(Bastide)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거나한 부서 회식이 있었다. 가정집을 개조했다는 그 곳은 흰 벽을 높게 올리고 마당에 야외석과 집 내부에 내실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음식과 서비스와 분위기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특별히 100% 프렌치 와인만을 구비해놓은 와인 리스트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는 물론 알자스, 론, 루아르 등 프랑스 곳곳의 와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와인리스트에는 평소 마셔보고 싶었지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여러가지 와인들이, 잔으로 판매하는 것, 지역에 따라 분리한 리스트, 빈티지별로 분리한 고급 리스트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일행을 기다리며 처음 주문한 와인은 1999년 샤토네프 뒤빠프였는데, 얼마나 향도 풍부하고 맛있었는지 그 후 주문한 와인들이 그에 못 미쳐서 더욱 아쉬운 와인이었다.

샤토네프 뒤빠프(Chateauneuf-du-Pape)는 말 그대로 ‘교황의 새로운 집’이라는 뜻이다. 1309년 로마 법왕청의 분열로 인하여 교황이 로마로 부임하지 못하고 아비뇽(Avignon)에 유배되었을 때 샤또뇌프 뒤 빠프 지역에 피서용의 별장을 지어놓고 지낸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 별장은 16세기 종교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는 빌리지를 향한 쪽 성벽 두개만 남아있는데, 빌리지에서 바라보는 높은 성벽이 중세기 샤토네프 뒤빠프의 위엄을 충분히 말해준다.


샤토네프 뒤빠프는 론(Rhone) 지방에 속한다. 론은 북부 론과 남부 론으로 나뉘는데, 북부 론은 리옹(Lyon)시에서 약 20마일 남쪽에서 시작하여 비엔(Vienne)과 발랑스(Valence)까지를 말하며, 주로 시라 품종이 주가 되는 에르미따쥬(Hermitage), 코르나스(Cornas), 꼬뜨로띠(Cote Rotie) 지역의 와인이 유명하다.

남부 론은 볼렌(Bollene)에서 아비뇽까지인데, 그라나슈(Grenache), 무베드르(Mourvedre), 시라를 포함 여러가지 품종을 블렌드한 레드와인을 만드는데, 그 중 잘 알려진 것이 꼬드뒤론(Cotes du Rhone), 샤토네프 뒤빠프(Chateauneuf-du-pape), 지공다스(Gigondas) 등이다.

샤토네프 뒤빠프는 남부 론 지방에서도 가장 넓은 와인 생산 지역으로 꼽히며 그 크기가 거의 생테밀리옹에 버금간다. 커다란 자갈이 깔린 포도밭에 평균 40~50년은 되었음직한 오래된 포도나무들이 심어져있으며, 엄격한 기준에 따라 많은 양의 포도 가지가 잘라져 나가고 밭의 면적에 비해 소량의 포도만이 재배되는 곳이다. 이 지역의 엄격한 룰은 포도나무의 가지치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포도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확한 포도의 5%는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룰 또한 함께 적용되고 있으며, 그라나슈, 무베드르, 시라를 포함한 10여종 이상의 포도 품종을 적절히 섞어서 만들어야 한다.

구르는 듯한 완만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지역 포도밭들은 햇빛을 듬뿍 받고 풍부한 과일향과 강한 맛을 내는 포도를 생산해낸다. 좋은 와인을 생산해내기위한 조건인 햇빛, 떼루아, 엄격한 룰이 모두 어우러져서 그 명성에 걸맞는 와인이 생산되고 있는 곳이며, 1999년 이 기갈(E. Guigal)의 샤토네프 뒤빠프는 재작년 와인스펙테이터지 선정 ‘올해의 100대 와인’에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샤토네프 뒤빠프는 숙성시키기보다는 출시된 후 금방 마셔야 하는 와인으로 알려져있다. 보통 병입된지 2년 후에 마시면 적당한 와인이 대부분인데, 그에 비해 평균 알콜 농도는 12.5%로 높은 편이다. 물론 매우 잘 만들어진 샤토네프 뒤빠프는 숙성이 가능하여, 약 15년 동안 숙성시켰다가 마실 수 있는 샤토네프 뒤빠프도 존재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샤토네프 뒤빠프 지역에서도 백포도주가 생산된다.

그러나 적포도주가 전체 생산량의 95%나 되는 만큼 이 지역은 부드럽고 과일향이 풍부한 적포도주로 훨씬 더 잘 알려져있다. 와인 전문가들은 샤토네프 뒤빠프의 적포도주가 잘 익은 자두와 지중해의 햇빛을 연상시킨다고 하는데, 아마도 남부 론의 지중해풍 날씨가 질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샤토네프 뒤빠프의 특성은 풍부하다못해 강하게까지 느껴지는 과일향과 진한 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숙성시키기 어렵고 출시된지 얼마 안 되는 영(young)한 상태에서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는 점이다.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는 프랑스 시골에서 가을, 겨울에 주로 먹는 음식으로, 향과 맛이 강한 스튜나 겨울철 많이 먹는 캐서롤 등이 좋다.

남부 론 지역의 와인은 평균 5년에 한번씩 훌륭한 빈티지를 맞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설적인 1978년을 비롯해서 1989, 1990, 1998년이 유명한 빈티지이며, 1999, 2000년 또한 그 뒤를 바짝 쫓는 좋은 빈티지로 여겨진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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