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버네 소비뇽

2012-06-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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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선물로 적합한 와인을 추천해달라는 것이다. 와인을 마시다보면 혼자 마시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와인은 누군가를 감동시키기에 적합한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카버네 소비뇽이 이에 속한다.

카버네 소비뇽은 가장 흔한 품종의 와인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은 종류와 양의 와인이 만들어지는 품종이기도 하다. 적포도주를 잘 대변하는 진하고 깊은 색과 강한 맛과 향, 과일향과 태닌과 산도의 부족함 없는 어우러짐,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루는 조화가 매우 뛰어난 카버네 소비뇽은 적포도주의 대명사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토양과 기후에 까다로운 피노 누아와는 달리, 전 세계 곳곳 각기 다른 토양과 기후에도 잘 적응하며 자라는 강인함은 카버네 소비뇽의 커다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카버네 소비뇽의 또 한 가지 장점은 100% 순수하게 카버네 소비뇽으로만 빚어진 와인을 마셔도 대단히 훌륭하고 만족스럽지만, 카버네 프랑, 말벡, 페팃 베르도, 멜로 등 다른 품종과 블렌딩하여 마실 경우에 최고 수준의 맛을 내는 와인으로 다시 탄생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는 100% 카버네 소비뇽으로 빚은 와인이 아니더라도 카버네 소비뇽이 75% 이상 함유된 와인이면 병의 레이블에 ‘카버네 소비뇽’이라고 기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적포도주 품질의 잣대가 되고있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와인 또한 카버네 소비뇽 블렌드가 대부분이며, 포메롤과 생테밀리옹 지방 정도가 카버네 소비뇽이 아닌 멜로를 주로 사용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적포도주로 여겨지는 샤토 라피트 로실드, 샤토 라투르, 샤토 무통 로실드, 샤토 마고 등은 모두 카버네 소비뇽을 주로 사용한 카버네 소비뇽 블렌드 와인인 것이다. 이렇게 카버네 소비뇽을 주로 사용하여 다른 품종과 블렌드한 와인을 영국에서는 클라렛이라고 부른다.

와인이 숙성하게되면 태닌이 적어지면서 맛이 훨씬 부드러워지는데, 모든 와인이 그러한 것은 아니고 숙성을 시켜서 더욱 부드러워지고 깊은 맛이 나는 와인은 전체 와인의 소수에 불과하다. 숙성을 시켜서 맛이 좋아지려면 풍부한 양의 태닌과 산도를 함유해야 하는데, 카버네 소비뇽 만큼 숙성을 시켰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품종의 와인도 드물다.

카버네 소비뇽은 적포도주 중에서도 특별히 태닌의 함량이 높은 품종의 와인으로, 아주 잘 만들어진 카버네 소비뇽을 10년에서 20년 동안 숙성시킨 후 마셨을 때의 만족감은 다른 품종의 와인이 따라오기 힘들다.

현재 카버네 소비뇽 생산지역으로 유명한 곳으로는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 외에 미국,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등이 꼽힌다. 특별히 미국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는 적포도주 품종이 백포도주 품종보다 약 두배 가까이 생산되고 있는 대표적인 적포도주 생산지역으로, 전체 생산되는 포도주 품종 중 카버네 소비뇽이 차지하고 있는 양이 30%에 이르러서, 24%의 샤도네와 18%의 멜로를 앞서고 있다.

1991년에서 1997년 사이 미국 내 적포도주 판매량은 약 150%나 증가했는데, 이 중 카버네 소비뇽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다. 미국 내 적포도주 판매량 증가는 1990년대 초에 프랑스인이 미국인보다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율이 훨씬 더 낮다는 발표와 함께 적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심장병 예방과 관계가 있다는 학설이 설득력을 띄면서 생긴 결과이다.


캘리포니아산 카버네 소비뇽의 판매량이 매년 꾸준히 늘고 있는 이유는 단지 심장병 발병 비율을 낮추려는 것 때문만은 아니고, 많은 투자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캘리포니아산 카버네 소비뇽의 품질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으며, 항상 일정한 기온과 강수량, 일조량으로 인해 매해 품질이 매우 고른 카버네 소비뇽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나파 밸리의 카버네 소비뇽은 병당 20달러 미만의 가격을 찾기 힘들 정도로 전체적인 고가 현상을 빚고 있는데, 미국의 몬다비와 프랑스의 로실드가 함께 나파에서 만을어내고 있는 오퍼스 원의 경우, 세계 최고로 여겨지는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라피트 로실드나 무통 로실드와 거의 동일한 가격에 출시되고 있을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 출시되는 고가의 카버네 소비뇽 중에는 레이블에 ‘리저브’(Reservwe)라고 표기된 경우가 있는데, ‘리저브’는 각 와이너리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예를 들자면 BV 와이너리에서는 정해진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만든 와인을 ‘리저브’라고 부르며, 몬다비 와이너리의 경우 특별한 비율로 블렌드된 와인을 ‘리저브’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 월 스트릿 저널지의 부부 와인 칼럼니스트 도로시 게이터와 존 브레처가 추천한 50달러 미만의 미국산 카버네 소비뇽으로는 샤토 세인트 진(Chateau St. Jean), 스털링, 북월터, 샤토 몬텔레나 칼리스토가 쿠베, 클로 페가스, 가이저 피크 와이너리 리저브, 릿지, 스텔츠너 등이 꼽혔으며, 이 중 어떤 것이라도 연말 선물로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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