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저녁밥을 먹으면서 우편물을 보다가 교회의 주보를 읽었다. 그 주보의 한편에 ‘삼분 명상’이란 코너는 다이아몬드의 가공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다이아몬드의 원석이 처음 발견되면 그 모습은 검고 단단한 돌 조각에 지나지 않습니다?’’교회 주보에 다이아몬드 가공이야기가 나오면 그 결말은 뻔하지 않은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여 우리의 영성을 연마하여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되자는 내용이란 건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추측대로 역시 내용은 뻔했는데, 갑자기 평범하기 그지 없는, 아마도 글 쓰는 이도 별 신경 쓰지 않고 썼을 것인 한 줄이 내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그 것은 ‘빛을 받아 찬란히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빛을 받아..’라는 구절이었다. ‘아! 다이아몬드도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구나. 단 한줄기라도 외부에서 빛을 받아야만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거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인데, 그 순간 나에게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보석의여왕이라는 다이아몬드도 반사할 빛이 없으면 다만 단단한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인간을 다이아몬드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그런 면에서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빛을 받으면 어떤 돌은 찬란히 빛나는 보석이 되고, 어떤 돌은 그냥 돌멩이로 남아 있다. 이 차이는 사람들 개개인의 능력 또는 노력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잘나고 노력해도 절대자의 은총 또는 자비 없이는 그 노력이 빛날 수가 없다. 종교란 아마도 우리를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게 할 수 있는 빛이 어느 곳으로부터 오는지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처럼 그 빛이 밖에서 올 수도 있고, 불교처럼 내 안에서부터 올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빛이 인간을 돌멩이가 아니라 보석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
또 하나 다 알고 있는 상식, 다이아몬드는 다른 다이아몬드로만 깎을 수 있다는 것, 커팅이 잘 된 다이아몬드는 같은 크기라도 값이 훨씬 더 많이 나간다. 빗대어 말하면 사람도 사람끼리 부딪치면서 그 영혼의 꼴을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 다이아몬드가 빛을 반사하는 가장 이상적인 각도로 연마되었을 때 찬란한 빛을 발하듯이, 같이 부대끼고 힘들지만 어떤 이는 극복하고 어떤 이는 좌절한다.
유명한 다이아몬드 유통회사인 드비어스의 광고문구는 ?/SPAN>다이아몬드는 영원히?/SPAN>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할 지 몰라도 그 소유자는 영원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무엇을 영원히 간직해야 할까? 연말이 되고 한 해가 다 가고 보니 이런저런 약간은 철학적인 고민이 시작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