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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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일이 없습니다

2003-12-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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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창-이은숙

나이가 들면서, 사회생활을 경험할 때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될 때가 되면서 인간에게는 큰 고통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바르고 정직하고 잘났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어느 순간에는 이유없이 무조건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 말도 아니 되는 경우로 자신이 무너져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무슨 생각들을 하십니까?

열 아홉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의 가슴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에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그건 어렵지 않아요. 나쁜 일을 하지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됩니다.” 맹사성 왈 “그런 것은 어린애도 다 아는 이치 아닙니까? 먼 길을 온 내게 고작 그것밖에 할 말이 없답니까?”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무명선사가 차나 한 잔 하라고 붙잡자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선사가 물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이 흥건해졌습니다. 그만 따르시지요.” 맹사성이 소리쳤지만 ? 굳榮?태연하게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난 맹사성을 보고 말했습니다. “찻잔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지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왜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그는 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그만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고개를 숙여서 그 상황을 넘어가야 하는 것인지…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자신의 지식이 풍부하다고 하여 자신의 인격이 바르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옛말에 익은 벼가 고개를 더 숙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자만하기 보다는 고개를 숙일 때 정말 존경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살아가면서 부딪힘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오늘도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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