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California에 오던 해이다. 어느 pop song에서 들었던 것처럼 California는 비가 오지않는다고 알았다. 그러나 그해는 10월 부터 4월까지 엄청나게 비가 왔던 기억이있다. 그러한 경험도 무색하게 나는 아직도 이곳을 소개할 때면 비가 안오니 우산은 필요 없다 한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은 꼭 잊지 않는다.
California에서의 첫 여름, 여름 야유회를 계획 한 일이 있었다. 비오지 않는 날로 잘 골라야 한다는 사명감에 여러 사람한테 조언을 구했다. 답은 한결같이 아무 토요일이면 괜찮다 했다. 이해가 가질않았다. 어느 분이 일러주시기를 이곳은 겨울만 빼면 비가 안오는 사막기후라 하셨다. 아휴! 나의 무지! 고민 끝! 야유회는 아주 성공리에 끝났지만 그 긴 여름, 왠지 모르게 항상 가슴이 답답하였다. 고향 그리움 때문일까? 찌고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 한번 내리고 나면 전 세상 얼마나 상쾌하고 깨끗하고 시원한가! 비에 씻긴 온세상의 상쾌함을 그리면서 향수에 젖은 나의 모습이 우습기도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사계절의 미묘함이 마음속 깊숙히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깨달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하여 달력을 안보아도 개나리, 진달래의 싹만보아도 아! 이제는 봄이구나, 천둥 번개 소나기는 여름, 나무들이 울끗 불끗 옷을 갈아입을 때면 가을, 그리고 아침에 손이시렵고 입김이 눈앞을 가리울때면 그냥 이젠 벌써 겨울이네하는 우리의 지혜를 그리고 있었다.
요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설악산의 불빛같이 빨간 단풍나무, 옛 교정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나를 향하여 손짓하였던 것이 소록소록 생각이나 다시금 나를 사춘기 소녀로 착각하게 하고있다. 길을 걷다 괜시리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파 떨어진 낙엽을 발로 들추어보면서도 재빨리 발을 빼고 낙엽을 털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계면적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혼자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낙엽에 한번 헛발질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감나무에 열린 감들도 정감스럽지만 늦은 가을, 잎새귀 다 떨어진 나무가지에 앙상히 붙어있는 몇개의 감들에게서 기다림의 서정을 느낀것이 나이들은 지금도 변함이 없음은 대자연의 가을이 가지고 있는 마술인가 보다.
이처럼 가을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정감이 사계절이 뚜렸하게 없는 이곳에서는 달력을 들추다보면 어! 벌써 9월이네, 10월이네 하면서 비로소 가을임을 알고는 덧없이 빠른 세월만 세고있다. 11월 중순인 지금, 고향에서는 김장김치 준비때문에 정신이 없을지언데 비로서 몇일전부터 단풍잎들의 새로운 단장을 깨달음에 나는 가을이 소리없이 지나고 있음에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아직도 감잎새귀의 새파람에 위안을 얻으려하나 늦은 가을비가 겨울을 재촉하고있다. 아니 창을 때리는 빗소리는 겨울임을 말하고 있었다. 사계절의 변화를 잊어버리고 시간만 쫓아가다 보니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함이 아쉬우나 항상 언제나 제자리에 있음이 나에겐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