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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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2003-11-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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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선 칼럼]

▶ 본보 편집위원


그렇게 개혁하고 사정한다는데 한국에서는 왜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오래 사신 한인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사람 사는 곳에 돈 문제는 늘 생기기 마련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 의문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한국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하루라도 그런 뉴스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으므로.
요즘은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와 기업들의 부정한 정치자금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똑 같은 사람들끼리 누가 더 먹었니 덜 먹었니 하며 이전투구하는 모습에 국민은 탄식할 기력마저 없다. 그 와중에 신문에 공개된 엄청난 규모의 ‘돈 더미’ 사진은 극민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그 돈 사진은 어느 건설사가 회사 돈을 빼돌려 만든 비자금70억원을 ‘금고용’으로 구입한 빈 빌라의 방에 쌓아 둔 것이라고 한다. 그 돈 중 대부분은 아마 공사를 수주하거나, 탈세를 하거나, 인허가에 편의를 봐 주는 인사들에게 건네질 돈일 것이다.

한국의 한 신문은 그 돈더미 모습을 ‘헐리우드 갱 영화에서도 보지 못할 무지막지한 것’이며 ‘마치 성벽’같았다고 표현했다.
권력층과 기업인의 부정한 돈거래는 한국사람들에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일상화돼 몇 십억, 몇 백억원이 오갔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런 한국사람들이지만 막상 현금더미의 실체를 보면서 어지간히 속이 상한 모양이다. 자기도 모르게 ‘저 돈 다발 중 몇 개만 있어도…’하는 생각을 하고는 씁쓸한 절망감을 눌러 삼켰을 것이다.
범죄조직이 아닌 정상적인 기업에서 그런 현찰 돈더미를 마련하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을까. 그 돈더미 사진은 우리의 현실이다. 계산하기도 힘든 거액의 현금들이 뇌물과 정치자금으로 오가는 음습한 ‘부패 공화국’의 자화상이다.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국민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국가발전의 최우선 과제는 그것이다.
그런데도 부정부패는 여전히 계속된다. 검찰이 떠들썩하게 수사하고 언론이 지면을 도배질 해도 별로 교훈이 되지 못한다. 그 일에 연루돼 수감을 찬 사람들도 어찌된 일인지 얼마후면 사면복권돼 여전히 사회를 활보한다.
왜 그럴까.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아무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말로만 ‘깨끗한 사회’를 외칠 뿐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다.

다른 사람의 부정부패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신들의 그런 행위에는 ‘불가피’하다고 합리화한다.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이나 거부감으로부터 자신의 경우만은 예외인 것이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요,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불륜의 합리화와 다를 바 없다.
지독한 ‘이기적 도덕불감증’이다. 그것은 한국사람들의 돈과 권력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환경’에 기인된다.
돈과 권력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한국사람들의 ‘심리적 한(恨)’에 기인된다. 한국은 돈이나 권력, 그 둘 중 하나는 가져야 대접받고 행세할 수 있는 사회다. 대부분 못살던 시절에 자란 기성세대들은 그 둘 중 하나도 갖지 못한 자신들의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또 그로 인해 자신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뼈저린 경험을 한 세대다. 기성세대는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돈과 권력에 집착한다. 부모의 교육이 그렇게 유도했고, 자신들도 ‘부모처럼 살지는 않겠다’며 자신들을 채찍질했다.
그들은 높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이성적 판단은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넘지 못한다. 부정부패를 ‘관례’로 용인하는 도덕불감증의 사회가 초래된 것은 그 때문이다.

정부 주도 경제발전 최우선 정책은 그런 심리를 더욱 부추겼다. 그것은 법과 도덕을 후퇴시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황금만능주의를 만연시켰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자금과 정책을 쥐고 흔들며 기업으로부터 부정한 돈을 챙겼다. 기업인들은 장부를 조작해 거액의 비자금 만들어 그들에게 제공하는 대신 이권을 챙겼다.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일반인들도 정도의 차이지 예외일 수 없다. 관공서, 기업거래, 심지어 교육현장에 까지 모든 인간관계에서 비정상적인 돈이 들어가야 일이 되는, 비도덕적이고 비효율적인 ‘고비용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정상적인 수입으로는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이 턱없이 부족하니 비정상적인 수입을 기대하고, 그것이 부정부패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 기성세대 중에서 부정부패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적인 참회와 양심선언 없이 개혁을 논함은 부질없는 일이다. 집권자들이 아무리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외쳐도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으로 공허할 따름이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자금 논란도 살아남기 위한 치졸한 다툼일 뿐 진정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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