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타계한 정준영 전 한인 YMCA 회장
▶ 한인 청소년 위해 일생 바쳐
11일 타계한 정준영 전 워싱턴한인YMCA 회장의 일생은 이타행(利他行)의 꿋꿋한 여정이었다.
그는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 고려대 수학과를 마치고 1968년 유학차 도미, 아메리칸대 대학원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
이후 평생을 자신과 가정보다 한인사회를 껴안으며 아낌없는 열정을 쏟아내왔다. 초기 이민자중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워싱턴 한인 YMCA를 빼놓고 그의 삶을 설명할 수는 없다.
1978년 창립된 Y의 초대 총무를 맡은 이래 병마로 쓰러질 때까지 청소년 합창단, 청년 동계 캠프, 어린이 여름학교, 선교여행등 2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1세들을 위해서는 컴퓨터 및 영어강습등 숱한 프로그램으로 이민정착을 도왔다. Y의 운영이 어려울 때는 간호사로 일하는 부인 정복희씨의 월급마저도 상당 부분을 끌여다 쓸 정도로 그는 영원한 Y맨이었다.
회장으로 봉사하던 그가 쓰러진 후 Y도 무너졌으며 누구도 그의 역할을 대신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는 청빈했고 무엇보다 한인사회를 사랑했다. 평생 남 돕는 일만해온 사회사업가였으나 정작 자신은 변변한 집 한칸도 마련하지 못했다.
98년 중풍으로 병상에 누웠을 때 그에 남겨진 것은 ‘의인(義人)’이란 명예뿐이었다. 틈틈이 지인들과 한인사회에서 그의 힘겹고 쓸쓸한 투병생활을 돕기 위한 손길을 내밀었으나 그는 알링턴의 한 자그만 아파트에서 휠체어에 의지한 채 조용히 잊혀져갔다.
정 전 회장이 다시 쓰러진 건 지난 10월. 이번엔 폐렴까지 겹치며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담당 의사의 회생 가망이 없다는 최후통첩에 따라 11일 아침 산소호흡기마저 뗐으며 오후 5시50분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았다.
그의 제자인 김성덕씨는 정 총무님이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선생님을 돕기위해 나서려던 참이었다며 비통해했다.
그의 지기인 한성호 목사는 정 전 회장은 별중의 큰 별이라며 우리는 아주 특별한 장례식으로 그를 보내려한다고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이종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