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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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땅

2003-11-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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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울너럭]

▶ 허승화 교수


박교수! 이제야 캘리포니아에 정착 해야할 때가 와서 새크라멘토를 택했습니다.
이유라면 좋은 기후와 풍부한 자연, 교민사회, 그리고 지리적 조건이라 하겠습니다. 지리적 조건이라면 거의 두시간 거리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네파 밸리, 레익 타로, 요세미티 국립공원입니다. 새크라멘토에 정착 후 미국인과의 대화에서 받은 인상은 이곳은 큰 도시이면서 중서부의 조그마한 시골 사람들같이 순박하면서 친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모든 일터에서 백인 뿐만 아니라 동양인, 흑인, 멕시코인, 유럽 이민인 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 이곳이 내가 설 땅이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새크라멘토에 이사오면서 ‘새롭다’고 느낀 것 중 또 하나는 빨간색, 분홍색, 하얀색의 커다란 꽃들이 주요 길거리의 한복판에 아름답게 피어있어 운전자들의 눈을 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쇼핑몰, 병원과 의사 선택의 자유가 많다는 것이 장점의 하나입니다.

지난주, 집사람과 막내아들을 대동하고 처음으로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50번 고속도로를 달려 남쪽 레잌타호로 향하는 길은 양쪽으로 우거진 침엽수 길을 따라 옆으로 개울이 조용히 흐르는 길을 한참 달리다보니 문득 설악산의 정경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의 대화를 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종종 이곳을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도 하였답니다.
이렇게 자연 속에 푹 빠져 들면서 생각나는 것은 즐겨 읽었든 법정스님의 자연과의 대화들이 생각납니다. 그는 자연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저 개울물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면 내 안에 묻은 먼지와 때까지도 말끔히 씻겨지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으며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자연 앞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은 접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래야 침묵 속에서 ‘우주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라고 그의 저서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박교수! 레잌타호에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있을 때 문득 머리를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답니다. 인생 60마일 지점에서 생각하게 하는 것은 한국인인 동시에 미국인으로 살아온 것이 과연 불행인지 행운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단연코 나는 행운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양쪽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처음 유학 왔을 때 캘리포니아의 좋은 기후와 풍부한 자연의 혜택을 느끼면서 언젠가는 이곳으로 와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했던 약속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나에게 축복의 땅이며 나의 고향입니다.
박교수! 내 책상 위의 조그마한 달력에 빨갛게 물든 설악산의 단풍과 장엄한 바위가 그 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설악산의 아름다움은 한국에서 나 미국에서 그림으로 보는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요?

새크라멘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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