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거리로 내몬다는 아내의 역정 속에서도 지난 달 주말은 딸아이(8학년)의 캔디를 팔아주는데 온종일을 보냈다. 주로 세이프 웨이등 대형 수퍼마켓 앞에서 교복을 얌전하게 차려입고 지나가는 쇼핑객들에게 캔디를 권하는 일이었다. 한국의 껌팔이들이 연상되어 매우 볼썽사나웠지만 미국인 손님(?)들의 열성적인 협조 덕분에 3시간 남짓 동안 2박스 이상을 판 적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각 사립(초·중)학교등에서는 교육비조달 명목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캔디나 각종 물품을 강매시키고 있다. 사립학교의 경우 엄연히 학비가 따로 존재하는데도 학생들에 독립심을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각종 세일즈를 강요하고 있다
성취감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학업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도대체 캔디를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캔디를 팔다보면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새로운 경험과 자립심등을 자극 받을 수 있고 또 학비 인상보다는 다함께 노력하여 함께 교육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미국의 교육은 학업위주보다는 함께 교육하는 모습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험중심보다는 내실성적, 특별활동, 사회봉사등 다양한 요소가 입학 기준에 반영되고 있다.
인간사회에 있어서 ‘교육’만큼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낱말도 드물 것이다. 교육은 기른다는 뜻을 포함, 스스로 성장하는 능동적 기능등 정의를 하자면 한이 없다.
요즘 한국에서는 조기유학붐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캐나다 유학 신청 창구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조기유학붐의 열기를 대변한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왜 이지경이 되었을까. 바로 시험중심의 교육제도 때문이다. 박 터지게 경쟁해봐야 여전히 좁은 대학문, 후미진 대학에서 썩을 바에야 아예 넓고 편한 미국등 외국에서 교육문제 하나만큼은 맘 편하게 지내보자는 심사일 것이다. 그러나 각 나라의 특수성에 따라 실시되고 있는 교육이 제도가 한국실정에 얼마나 맞을 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엄청난 외화를 낭비하며 내자식 외국에서 잘 가르쳐 보자는 이기적인 교육 자세가 한국에서 얼마만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느냐하는 것은 대단히 의문이다. 조기유학은 교육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도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