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물처럼 가을처럼 그렇게....

2003-10-25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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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단상

▶ 이언주 취재·편집부장

어디서부터 오는지 몰랐는데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마음으로부터.....

나무도
숲들도 아직 푸르기만 한데
정녕 나는 물들고 있나보다

어제처럼 오늘도
차타후치 강물은
서울의 한강처럼
그저 조용히 흐르기만 하는데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렇게 시간을 흐르는
강물을 나는 슬퍼하고 있나보다

흐름이 유유한 날도
무섭도록 도도한 날도
강물은 변함이 없는데

내 삶은 풍랑을 느끼고
시퍼런 두려움을
잉태한다

그런 날은
강물이 그저 강물이 아니다
홍수에 밀려간 삶의 잔상이,
아픔이 수 없이 떠밀려 온다

왜 그저 강물이 아니고
슬픔이 되고
그리움이 되는지

내 삶의 언저리에
늘 그것은 숙제처럼
그렇게 있을뿐이다

내 생이 다하는 날은
그것을 과연 알 수 있을런지....
나는 자신이 없다

내 인생의
강물은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알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나를 혼돈으로
치닫게 하고
나는 우주의 떠돌이 별처럼

그저 아무대고
떨어져 혼돈속을
헤메고 있나보다

그러기에
내가 누구인지도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모르나 보다

강물들은
저들이 흘러서
어디로 가는줄이나 아는지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번민의 시간을 그저 흐르고 있을뿐인지...

바다라고 했지
그들의 귀착점이
나의 바다, 우리의 바다는 어디있는가

그들의 바다가,
바다가 끝이 아니듯
우리의 그곳도 끝이 없는 영원이겠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듯이

우리는 그저
영원한 행로의
한 부분을 살고 있을뿐

그런데도
무엇이 그리도
알고 싶고

그립고
그리워지고
외롭고
외로워지는지

사람마다
그런 사랑을
품고 사는지

인생의 황혼에도
풀지 못할
그런 숙제를

왜 모두들
힘겹게 부여 안고 사는지
그저 말없이 흐르는

차타후치 강물을
고향처럼 두고 떠나온
서울의 한강처럼 여기며

우리는 그런 착시현상을
인생이라고
여기면서 사는건 아닌지

내가 있어
너를 볼 수 있듯이
느낄 수 있듯이
또 부를수 있듯이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세상을 지으며 살고 있진 않은지

외로움이든
그리움이든
슬픔이든

아프도록,
죽도록 견디기 어려운
사랑이라도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무엇이 되고

아픔은
눈물로 강을 지어
결국은 사랑을 만들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찾아 나서고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에 강을 이루어
또 다시 흐르고 흘러서

아픔과 한숨과
외로움과
하염없음을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데
어디서 가을처럼
기쁨은 올 수 있는가.....

오늘도 말없이 차타후치 강물은
두고 온
서울의 한강처럼 흐를뿐인데

마음으로부터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 영원을 흐르는
그리움을 타고.....


* 언제부턴가 이 세상 모든 언어가 살아있는 물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나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물질로 우리의 일상에 작용하는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영원한 생명체로서 스스로 운행하는 것이고 그 안에 우리가 서 있는 것 입니다.
모든 것은, 사고하는 지각체계마저도 생명력이 있는 물질인 것 같습니다.

/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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