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머니 사진을 본다.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웃고 계신 모습, 손주를 쳐다보는 다정한 얼굴, 아버지랑 나란히 선 조금은 어색한 듯한 표정... 미국에 올때 가지고 오진 않았지만, 사이즈가 보통 스냅사진의 절반 정도 되는, 낡은 사진 한 장을 집어 들듯이 떠 올리곤 한다.
두 뺨에 아직 뽀얀 젖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앳된 처녀아이가 수줍고 웃고 있다. 삼단 같은 검은 머리를 정갈하게 땋아 늘인 복사꽃같은 열 예닐곱의 내 어머니 - 나는 그 사진을 볼 때 마다 가슴이 아릿해지곤 한다. 흑백 사진 속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당신이 꿈꾸었을 청춘과 미래가 잡힐 듯 하다. 그러나 어느덧 볼살이 쪼그라들고 주름이 깊게 패인, 젊은 날의 모습은 자취 없이 스러진 중후년(나는 애써 ‘노년’이란 표현을 피하고 싶어진다)의 어머니가 그 자리에 서 있다. ‘세월이란 참...’ 한숨이 절로 스며나온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와는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새가 없었다. 어머니는 삶에 부대끼시면서, 비싼 옷이나, 보석들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신 채, 환갑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셨다. 어머니는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사셨는데 어머니의 그 열심이 이제 와서 회한처럼 한 번씩 나를 흔들어대곤 하니 내가 뒤늦게 철이 드는 건지 나이를 먹어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짬짬이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주로 옛 노래들을 즐겨 부르셨는데, 나는 왠지 애조띤 그 가락들을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나중엔 어머니를 따라 제법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80년대 초입, 가수 조용필의 등장으로 어머니와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게 되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니 ‘허공’이니 하는 노래들을 뜻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들에겐 ‘오빠’로 불리며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고 내 어머니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으며 철없던 어린 계집애 입술에까지 자신의 노래를 올렸으니 조용필은 가히 ‘국민가수’ 라는 애칭이 무색하지 않는,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임에 분명하다.
얼마 전 우연히 쉰도 중반을 넘긴 그의 모습을 보았다. 조금은 지치고 쓸쓸해보이는 그와 그의 노래가 새삼 가슴을 파고 들었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다시 듣는 그의 ‘허공’ 너머로 내 어머니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며 시야를 채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