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면초가의 김병현

2003-10-10 (금) 12:00:00
크게 작게

▶ [스포츠]

▶ 이정훈 기자


김병현이 미국에서의 프로야구 인생을 접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현은 8일 AL 챔피언십 출전 명단에서 제외됨으로써 사실상 보스턴과의 고별은 물론 미 프로야구 생활의 끝장이 현실화 됐다.
김병현은 지난 4일 대 오클랜드전(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홈 관중들의 야유를 견디다못해 모욕적인 제스처로 대응, 일파만파의 파장으로 사실상 메이저리그에서 그 설 땅을 잃고 말았다.

물론 김병현은 아직 월드시리즈에 출전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고, 명예회복할 기회도 남아 있다. 그러나 챔피온쉽에서 제외된 선수가 월드 시리즈 무대에 다시 오를 기능성은 바늘 구멍보다도 희박하다. 결국 김병현은 보스턴과의 깨끗한 이별을 고하고 내년도를 기약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메리저리그에서 망신을 당할 대로 당한 김병현이 메이저리그에 잔류할지는 의문이다.

김병현은 알려졌다시피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선수이다. D벡스시절부터 김병현은 상대 타자들과 싸웠다기보다는 자존심과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사사건건 감독과 부딪히며 구설수에 올랐다. 감독의 교체명령에서부터 시작하여 선발 로테이션 고집까지 사사건건 옹고집으로 버텼다.
D벡스의 브렌리 감독은 김병현과의 까다로운 심리전에서 두 손 들고 결국은 트레이드라는 마지막 카드를 썼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에게 잘못보이면 십중팔구는 후보전락뒤 트레이드다. 당시 김병현의 보스턴 이적은 사실상 D벡스에서 설땅을 잃고 저니맨생활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인주의였던 김병현은 이를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즉 팀에 대한 로열티가 전혀 없어 보였다. 어느 팀에 가서든 확실하게 실력만 보여주면 된다는 식이었다. 보스턴에서도 김병현은 감독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7월중순경 플레이오프 레이스가 한창 달아오를 시점에서 김병현은 감독의 걸리라는 명령을 어기고 캔사스 시티의 강타자 카를로스 벨트레와 정면승부, 살얼음판 승리를 지켜내기도 했다.


김병현의 고집은 승리를 전제로 할 때만 통하는 모험이었다. 보스턴 관중들은 김병현이 디비전 시리즈 1차전(대 A’s)에서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 쓰자 김병현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승리 카드인줄 알았던 김병현이 패전 카드를 내보이자 보스턴은 김병현을 가차 없이 버렸다.
프로의 세계는 비정하다. 감독 이하 누구든 제 몫을 해내지 못하면 목으로 대신해야 한다.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물론 한 경기만 놓고 김병현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려 했던 보스턴 팬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러나 이를 욕으로 응답한 김병현은 실력에 앞서 우선 정신자세부터 되먹지를 못했다.

40도루 40홈런을 달성한 천하의 호세 컨세이코도 팬들과의 불화를 겪자 팀(A’s)에서 방출당한 뒤 얼마 못가 선수생활을 접었다. 김병현의 내년 시즌은 미 프로생활중 가장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 것을 의미한다. 김병현이 설사 미국에 남아있게 된다해도 이는 그 자신에게는 참을 수 없도록 곤욕스런, 머나먼 시즌이 예고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