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LA지사장의 비빔밥
2003-10-01 (수) 12:00:00
내가 좋아하는 음식
양푼에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상추와 열무를 양껏 담고, 시꺼먼 시골 된장과 찰고추장을 한바가지 들이부어, 갓 지어낸 밥과 함께 썩썩 비벼낸 비빔밥
한국관광공사 LA지사의 김태식 지사장이 말하는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
인터뷰 요청에 음식취향이 촌스럽다며 난감해하던 김 지사장은 막상 한일관의 전주 돌솥비빔밥을 앞에 놓자 전설 같은 음식이야기를 풀어냈다.
경북 문경 산양면. 산밑 오지가 그의 고향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74년 처음 전깃불이 들어왔다니 말 다했다. 동쪽은 소백산에 막히고 남쪽으론 바다가 먼 이 마을에 해산물이라곤 간잽이 고등어와 새우젓이 전부였다. 그나마 생선 꼴을 갖춘 건 10리 떨어진 장에서 ‘돌가루 종이’(시멘트 포대)에 싸온 절인 꽁치 뿐이라 하루 세 때 나물에 된장 넣고 비벼먹는 것말곤 달리 먹을 게 없었다.
고기는 한가위 같은 명절 때나 구경했다. 그것도 ‘검사필’이라는 축협 도장이 시퍼렇게 찍힌, 살코기는 한줌 잡힐까 말까한 돼지비계. 이 고기를 식구대로 나눌 분량이 안 돼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붓고 조선무를 숭숭 썰어 넣고 끓이는데, 하필이면 도장 찍힌 부위가 둥둥 떠 수면 위로 꼴깍거리던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다고 한다.
그 냄새가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었다는 김 지사장은 사람은 한창 뼈가 자랄 때 먹은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지론이다.
짐 지사장의 뼈를 여물게 한 음식은 또 있다. 시래기국, 콩잎국, 팥잎국이다. 싱싱한 나물조차 없는 겨울, 말린 시래기를 콩가루로 살살 버무려 끓여내는 시래기국은 시골의 주식이었다. 이렇게 지난한 기억을 가진 그는 뭐든 결사적으로 먹는 스타일인데 기름 앨러지는 체질이라고 한다. 도회지 출신인 아내는 갈치 요리를 해도 노르스름하게 구워내지만 그는 기름 든 걸 먹으면 목이 뻣뻣해오는 게 몸에 받지 않아 조림이 좋단다.
김 지사장이 타운 음식점 중 한일관을 자주 찾는 건 맛도 맛이지만 이런 태생적 정서 때문이다.
젊은 웨이트리스들이 배꼽 내놓고 기계적으로 서브하면 빨리 팁이나 놓고 가라는 느낌이 들어요. 주방장이 애써 만든 음식 맛이 달아나는 것 같고요. 이 집은 중년 아주머니들이 많고, 배려가 섬세해 좋아합니다
김 지사장은 손톱 밑이 까매도 어머니 손맛이 제일 맛있는 것처럼, 정성 만한 비법은 없는 것 같다는 평범한 멘트로 끝맺었지만 오지의 풍경과 겹쳐서일까, ‘양푼 비빔밥’이 정말 먹고 싶어졌다. <김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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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지사장이 양푼에 비빈 비빔밥 대신 전주 돌솥비빔밥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