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섯 쌍둥이라구요 ?

2003-08-2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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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 칼럼>

▶ 최재명(엔지니어)


‘산호세에서 오신 보호자분 ?’
‘네, 접니다.’
‘축하드립니다, 다섯 쌍둥이네요.’
‘네엣! 다.....다...섯......쌍둥이라구요 ??’
‘안돼!! 안돼!!’
지난 밤 꿈은 정말 악몽 그 자체였다. 세상에 다섯 쌍둥이라니 그게 어디 말이 될 소린가. 지금도 우리 아이들 다른 집보다 많다면 많다고 할 수 있는 셋이나 되는데 거기에 다섯 쌍둥이라면 이건 악몽이다. 아니지 꿈은 반대라고 했으니 혹시 이것이 길몽은 아닐까, 복권이라도 하나 사야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난이’의 배가 만삭으로 부른 것이 심상치 않다. 한동안은 커다란 배를 가지고도 제법 운동을 하더니 더위를 먹은 것도 아닌데 헥헥거리며 앉아있기도 버거운 모양이다. 혹시 진통이 시작된 것일까? 심호흡을 해가며 거의 드러누운 것이 예삿일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슬슬 준비를 해야할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준비를 하여야한단 말인가. 커다란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 수건, 미역국, 가위도 필요할까? 카메라랑 비디오는 필수.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일진데 기록을 잘 남겨놔야지.

이제 진통이 오는 모양이다. 안절부절못하고 입에서는 연신 끙끙거리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저 고통을 누가 알랴? 그런 고통을 인내해가며 새 생명을 낳으니 어머니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하였다.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가 싶더니, 이 어찌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침내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아이를 닦고 핥아주고 감싸주는 어미의 모습. 이 세상 어느 모습이 이보다 고귀하고 아름답다 할 것인가. 그런데 잠시 후 어미의 신음이 다시 시작이더니 둘째가 태어났다. 놀라움과 기쁨에 웃음이 가질 않는다. 아무래도 미역국을 많이 먹여야 하겠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하나, 또 하나, 또? 갑자기 다섯으로 불어난 아이들. 기쁘다 말해야할 지 슬프다 말해야할 지, 이젠 거의 기진맥진해 있는 어미의 얼굴이 참으로 가엾어 보인다. 한꺼번에 다섯씩이나 낳다니, 참으로 위대하고 거룩해 보이는 어미이다.


하지만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 난 졸릴 것은 못 참는 모양이다. 이제 다 낳았겠지 하면서 수고했단 말 한마디 건네고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서정주 시인은 한 송이 국화꽃이 피는 모습에 잠도 못 주무셨다는데 나는 신비스러운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면서도 잠의 유혹을 넘기지 못했단 말이니 참으로 섭섭한 일이다. 그러니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라는 훌륭한 작품을 남기셨지만 명색이 시(詩) 쓴다는 나는 ‘다섯 쌍둥이 옆에서’같은 흉내도 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섯 아이들은 어미의 품을 헤집고 젖을 찾아 빨기에 여념이 없더니 그새 새근새근 잠이 든 모습이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이제 미역국도 준비됐고 퇴근하는 길에 ‘PETCO’에 들려 ‘난이‘네 식구를 위한 통조림을 사와야겠다. 어미 것이랑 강아지 것이랑. 다섯 쌍둥이 강아지가 태어나는 모습에 다시 한번 생명의 경외함을 느껴보는 기회였다. 같이 지켜보던 아이들도 형용할 수 없는 고결함에 눈물까지 흘렸다. 다섯 강아지들아, 복도 다섯 곱절로 많이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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