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아들 시집살이

2003-07-1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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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날이 오기를 일년동안 손꼽아 기다렸다.
내일 모레면 아들이 보이스카웃 여름 캠핑을 떠나는 날. 무려 1주일 동안 집을 비우게 된다.
그 말은 곧? 일주일 동안 저녁밥 안 짓고, 아들 눈치 안보고, 실컷 놀러 다녀도 된다는 뜻이다.
나는 아무래도 나쁜 엄마인가봐. 왜 이렇게 입이 안 다물어지는 것일까.
아들이 ‘상전’이라, 언젠가부터 아들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아지다보니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나보다. 딸은 자라면서 친구가 된다는데, 왜 아들은 ‘제2의 남편’이 되는 것일까. 우리 나이쯤 되면 남편 눈치는 덜 보게 되는데 아들 무서워서 맘대로 못 하는 엄마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남편은 내가 밥하기를 싫어하는 눈치면 “괜찮아, 사먹지 뭐”, 저녁때 나갈 일이 생겼다고 해도 “다녀와,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하는데, 이제 편할만 하니까 아들이 봐주지 않는 것이다.
불과 1~2년전만해도 아들은 해주는 대로 먹고, 사 먹이면 사먹고, 엄마가 외출하면 싫어하긴 해도 자기 권한 밖의 일이라 주어진 상황에 토를 달거나 반항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덩치가 훨씬 커진 요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좀 사먹자고 해도 자기가 원하는 홈메이드 메뉴를 계속적으로 나에게 이야기함으로써 프레셔를 주거나, 나간다고 하면 ‘어디가? 언제와? 누구 만나? 빨리 와!’ 등의 잔소리를 늘어놓고, 들어오면 ‘어디 갔었어? 뭐 먹었어? 누구랑 뭐 했어?’, 심지어 전화 수다가 좀 길어져도 ‘누구랑 전화했어?’ 꼬치꼬치 캐물으며 참견을 하니, 뒤늦게 시작된 ‘아들 시집살이’가 보통 고된 것이 아니다. 한편으론 남편이 코치했나 의심도 해보지만 그런 눈치는 아니고, 자연발생 본능적인 ‘감시’인 것 같다.


지난 주말엔 장보러 가는데 갑자기 아들이 뒤따라 달려나오며 큰소리로 나를 불러댔다. 날이 갑자기 너무 더워진지라 소데나시에 앞판, 뒷판 조금 파인 원피스를 입고 나선 것이 아들 눈에 너무 ‘섹시’(*^.^*)해 보였나보다.
“엄마, 그러구 어딜 가는거야?” “마켓 가지” “옷 더 안 입어?” “날이 이렇게 더운데 뭐. 마켓에서 추우면 이걸 걸치려구” “이리 줘. 내가 입혀줄게“

아들은 그 땡볕에 기어코 가디건 스웨터를 직접 나에게 입혀주었다. 뿐만 아니라 마켓까지 따라와서 함께 장을 보며 감시했기 때문에 나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예쁜 원피스 맵시도 한번 못 내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장을 보아야 했다.

그 아들이 일주일이나 출타하시는 것이다. 남편이 출장가는 것보다 더 기쁘다고 하면 좀 심한가? 그런데 나의 기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8월 중순에 또 보이스카웃에서 거의 2주 동안이나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으하하하하!) 그 때문에 돈을 무지하게 써야했지만 거액의 경비도 나의 기쁨을 막을 수는 없다.

작년 가을 갑자기 아들을 보이스카웃에 집어넣은 위대한 결정이 이런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나의 동생은 몇 년전부터 자기 아들을 보이스카웃에 보내고 있었으나 나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작년 여름방학때 이야기가 달라졌다. 우리 아들과 동갑인 동생의 아들이 1주일짜리 캠핑을 세 번이나 다녀오는 것을 보고 내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어느 집에서 아이들이 방학동안 한국에 나갔다거나, 며칠씩 캠핑을 갔다고 하면 그처럼 부러운 일이 없었는데 보이스카웃에 들어가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니, 더군다나 우리 식구는 내가 캠핑을 너무 싫어하는 관계로 캠핑여행을 할 수가 없어서 아들에게 미안했는데 그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다. 순전히 캠핑 때문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런저런 이유로 아들은 보이스카웃 단원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7일간의 저녁 스케줄은 이미 아들 떠나기 오래전부터 단 하루의 빈 날도 없이 꽉 짜여졌다.

지금은 하와이 여행 때의 스케줄을 잡느라 머리를 굴리는 중.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윈윈 시츄에이션’ 이란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아닌가.

사랑하는 아들아, 씩씩하게 잘 놀다 와라. 엄마도 간만에 스트레스 좀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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