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인회관 사유물 아니다

2003-06-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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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인회가 다시 시끄럽다. ‘공조회 해체’와 관련해 한바탕 소란을 피우더니 이번엔 커뮤니티 성금 21만5,000달러로 마련한 건물의 ‘매각’과 관련해 잡음이 일고 있다. 재산세 체납으로 경매처분 됐다가 새 건물주와 카운티 정부의 선처로 간신히 위기를 넘긴 게 엊그제 일처럼 기억이 또렷한데 또 물의를 빚고 있다.

문제는 노인회가 야기했으니 스스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노인회는 다른 단체와 달리 거의 회장의 ‘독자적 리더십‘으로 유지돼 왔으니 회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얽힌 매듭을 풀어야 한다. 단체장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려면 나 보란 듯 당당하게 커뮤니티에 나와 전후좌우를 소상히 밝히고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냄새’의 진원에 대한 추궁에 마지못해 ‘억울함’을 토로하는 자세는 석연치 않은 느낌을 불릴 뿐이다. 단체를 이끌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를 범하기도 하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부끄러운 게 없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 지금 노인회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런 자세이다.

노인회장은 고만고만한 단체장이 아니라 최고 시니어 단체장이다. 올드타이머들이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들이 여럿 있지만 노인회 만큼 연륜이 깊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기대치가 높고, 그에 걸맞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무리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인들의 머리에는 아직도 유교적 사고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단체장은 이럴 때 이렇게 하는 거야”하며 정공법으로 나선다면 멋있는 지도자로 기억될 것이다.


한인회장 선거에 캐스팅보드 역할을 할 정도로 막후 실력자로 인정받았고 예우도 받아온 노인회장이 아닌가. 한인사회가 커지면서 단체들도 일일이 이름을 외기 어려울 정도로 수적으로 팽창했다. 이들 단체들이 걱정거리가 있을 때 원로인 노인회장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려면 노인회가 자리 매김을 똑바로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불거져 나오는 일들은 영 범주가 다르다.

노인회장은 약 17년간 노인회를 운영해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우고 있다. 무슨 일이든 끝이 중요하다. 마무리를 잘하고 물러나면, “노인회장직을 오래했지만 능력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강산이 두번 가까이 변하는 세월동안 혼자 좌지우지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노인회장은 오랜 측근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봉사 일념으로 행사마다 동행하며 일을 거들던 ‘수족’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한 점 의혹 없는 운영을 당부한다. 커뮤니티의 희망사항이기 전에 저승사람이 된 노인회장 ‘측근’의 바람일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가려진 대목이 있으면 백일하에 드러내고 ‘노인회의 현주소‘를 제 모습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노인회장은 회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공조회 해체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강변했지만 어찌됐든 노인회 소속이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도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비영리 봉사단체란 간판을 내걸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죽은 뒤 자녀들에게 장례비 부담을 주지 않으려 용돈이나 웰페어에서 때네 수년간 꼬박꼬박 납부한 회비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고 실망한 동료 노인들의 심정을 헤아렸다면 다시는 입방아에 오르지 않도록 자중했어야 옳았다.


노인회장과 회원은 엄연히 위치가 다르지만 나이가 비슷하고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은 동아리에서 보냈으니 돈독한 사이가 될 만도 하다. 노인회의 파행에 박수 보내는 회원은 없을 것이다. 노인회장도 그동안 쌓아온 우정이 사그리 무너져 내리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노인회가 삐걱대 회원들의 눈밖에 나면 그 자녀들로부터도 외면당하게 마련이다.

건물 매각과 관련해 “노인회장의 속셈이 무엇일까”하는 의구심이 확산되면 주워담기 힘들어진다. 혼자 덤터기 쓰지 않으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커뮤니티 재산인 노인회 건물 매각 움직임에 대해 “운영 정상화 조치”라고 회장 자신이 말했듯이 이를 위해선 새 회장단 선임이 급선무다. 노인회에도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하다. 노인회 자체에 선임기구가 없을 경우 신뢰할 만한 단체에게 위임해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건물 매각 논의가 필요하다면 신임회장단이 공론화 해 커뮤니티 공청회를 거쳐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

노인회장도 언젠가는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주위에서 만류해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하는 수 없다. 그러니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노인회장의 용단을 기다린다.

박 봉 현 <편집위원>bong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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