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학량과 햇볕정책

2003-06-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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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반정부투쟁하나?” 이렇게 물으며 인간관계까지 끊겠다는 동료가 있었다. 국가 정보기관에 통일을 위해 협조해야지 왜 싸우느냐고 하면서.
반정부 투쟁이란 건 다른 게 아니다. 정보기관이 탈북자에 대해 가혹행위나, 인권침해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나 혼자만 나선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비난이다. 나는 이에 대해 다른 말로 설명하고 싶다.
장개석의 패배는 장학량의 서안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 공산당은 풍전등화 상태였다. 그럼에도 장학량이 공산당을 소멸하라는 장개석의 명령을 거역하고 오히려 장개석을 체포하여 다 죽어가던 공산당을 살려준 것이다.
남달리 오래 산 장학량은 훗날 역사를 지켜보다 결국 서안사건은 자신의 실수라고 인정했다.
패배는 하였지만 장개석의 내부평정 우선 노선이 옳은 것이었다. 장학량은 공산당의 항일우선 민족공조에 넘어간 것이다.
요즘 민족공조를 우선해야 한다는 북한 노선을 따르는 햇볕논자, 반미주의자들은 장학량과 비슷한 감상주의자들이라는 생각이다.
‘6/3 북한 정치범 해체본부’가 발족하면서 첫 행동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갔다. 나는 이들이 순리가 맞는 행동을 한다고 확신한다. 이라크 전쟁이 반인권이라고 하면서도 북한 인권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이다.
내부가 이처럼 떨떨한데 어떻게 외부의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남한에서 탈북자가 개새끼처럼 맞아도 말 한마디 못하고 김정일 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좀 환상적이다.
유감스럽지만 탈북자 조직의 대표조직 숭의동지회, 탈북자동지회 등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라.
두드려 패는 기관에서 임명권을 받고, 녹을 타먹고 있으니 나설 수가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왜 이들은 김정일만 나쁘다고 하고 자신들의 처지개선 투쟁은 그만큼 못하는가. 북한보다 지독하지 못한 남한 정보기관의 눈치를 보면서 사니 어떻게 투쟁하겠는가.
이러한 상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관변 기관으로 떡고물이나 얻어먹으며 세월을 보내고 말 것이다. 김대중이 가면 이회창이 오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국익을 위한다며 탈북자는 제대로 받지 않고, 다 죽어가던 김정일에게 수억달러를 바치는 정권, 거기에 앞장선 정보기관의 수장, 이런 자들을 반대하는 것이 왜 ‘반정부투쟁’이란 말인가.

이민복/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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