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주 덩어리

2003-06-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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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헤어스타일에 만족하여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머리가 길 때는 짧기를 원하고, 짧을 적에는 긴 머리를 원한다. 옛날 사진들을 볼 때에도 제일먼저 하는 코멘트가 자신의 머리 스타일이다. 아내는 아직껏 자기마음을 흡족케 하여주는 미용사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며칠 전에 미장원에서 돌아온 아내가 미용사가 머리를 너무 짧게 잘랐다면서 거울을 이리 저리 보면서 여느 때보다 언짢아 하였다. 더군다나 패션 감각이 뛰어난 아들이 아내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보면서 한다는 소리가 “엄마가 모터사이클 헬멧을 쓴 것 같다”라고 말하여 마음이 더욱 언짢아 진 것 같다. 짧아서 시원하게 보인다고 말하는 나를 멋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면서 오히려 핀잔을 준다.

다음날 잠에서 먼저 깬 아내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무슨 말을 혼자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눈을 뜨며 무엇 때문에 그처럼 웃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오, 옛날에 고모가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고 말하면서 자기 머리가 “메주 떡”같다고 하였다. “메주 떡”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긴 설명이 필요하였다. 간장과 된장을 만들기 위해 콩을 삶아 으깨어 덩어리를 만들어 지푸라기로 싸서 나무에 달아 놓은 메주덩어리 이야기를 하여주었다. 메주덩어리가 못생겼기에 못생긴 여자를 가리켜 “메주 덩어리”라고 한다고 설명하여주었다.

메주 덩어리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아내의 가족이야기를 조금 하여야겠다. 아내는 전통적인 시골가정에서 태어났다. 남존여비가 심하던 옛날에 대부분의 한국여성들이 힘들게 살았지만, 장모님의 삶은 실로 힘든 삶이었다고 한다. 장인은 시골 지주의 큰아들이었다. 장모님은 북한에서 신학대학 재학 중 남쪽으로 혼자 피난을 나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전통을 따지는 유교집안의 시골 유지의 며느릿감으로 장모님은 적합하지 못하였다.

첫째 그녀는 크리스천이었다. 단발머리를 한 신여성이었던 그녀는 마을 여자들과 달랐다. 더군다나 핏줄을 따지는 한국문화에서 혼자 피난 온 배경 없는 피난민이었다.

여섯 명의 시누이들, 그리고 까다로운 성격의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였던 장모님의 결혼 생활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 장모님은 딸 다섯 명을 줄줄이 낳았다. 이러한 불리하고 건강치 못한 환경 속에서 아내는 성장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내의 형제들은 장모님을 중심으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와서인지 아내식구들끼리의 사랑은 대단히 깊다. 반면에 아내의 아버지와 그 쪽 식구들과의 관계는 소원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내는 아버지 쪽 식구들을 마치 나쁜 꿈처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아내의 고모들 중에 말이 험한 고모가 있었다. 장모님을 특히 미워하였던 고모는 첫딸인 아내를 가리켜 “메주 떡 같다”라고 부르며 장모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머리가 사방으로 뻗치는 제멋 대로인 아내의 머리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라 한다. 아내 둘째 여동생은 눈이 작다. 처제는 눈을 감으면서 웃는다. 웃는 모습이 매우 매력적인데, 그 잔인한 고모는 둘째를 가리켜 “눈을 손톱으로 찔러놓은 것 같다”라고 말하며 장모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작은 눈을 가리켜 “단춧구멍”이라는 소리는 들었어도 “손톱으로 찔러 놓은 눈”이라는 묘사는 처음 듣기에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 넷째 처제가 제일 구박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딸만 줄줄이 나은 것도 운이 나쁜 일인데, 넷째는 쌍둥이였다. 그 잔인한 고모는 넷째를 “마늘 쪽“이라고 부르며 장모를 모욕하였다 한다. 작고 갸름한 처제의 얼굴을 가리켜 하는 말이었다 한다.

나는 잔인하게 놀리는 말이 깊은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안다. 우리들은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웃는다. 그러나 잔인한 말로 인해 생긴 상처들이 웃음 속에 감추어져 있다. 특히 아이들의 별명을 부를 때 조심하자. 어른들에게 재미있게 들리는 별명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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