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격’인가 ‘파괴’인가

2003-05-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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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핵심 실세들에겐 유사한 특징들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제도권에 대한 혐오와 저항이다. 박정희 정권이 기록한 국가 현대화 공로도 부정하는 저항세력으로서의 사상적 정치적 특질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심지어 김영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제도권 안의 민주화 세력이 남긴 정치적 유산도 부정한다. 고향타령하고, 가신 키우고, 검은 정치자금을 물 쓰듯 한 구악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노무현 정권의 개혁은 과거 정권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급진적 시각에서 출발한다. 군사 문화적 보수적 권위주의를 깨고, 가부장적 가신정치를 배척하고, 지역주의를 타파하며 검은 정치 자금의 거래를 단절하겠다는 것이다.

위기를 향해 움직이는 ‘안보 시계’


하지만 노 대통령을 비롯한 핵심 세력들의 언행을 곰곰 따져 보면 확신이 가지 않는다. 탈 권위-정말 지당한 말이다. 권력 잡았다고 목에 힘주고 힘없는 백성에겐 으르렁대고 법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또 고향 사람들끼리 패거리를 지어 감투 갈라 먹는 맹주 정치도 패악 임에 틀림없다. 검은 정치 자금을 겁도 없이 착복하는 죄악을 눈감아 줄 국민 또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값진 목표가 과연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 사항인데, 의견은 가파르게 갈린다. ‘젊고 패기 찬 대통령과 개혁파들이 출현한 만큼 무언가 해 낼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가 그 하나다. 반대로 노 대통령과 그 실세들의 과거 행각과 현재의 언행을 지켜 보건대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 안 나오면 다행’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아니 ‘저 사람들이 5년 동안 무슨 일 저지르는 것 아니냐’고 가슴을 조이는 이들도 꽤 많다. 국가 안보의 핵심 부처에 “친북 좌파가 들어앉고”(야당 주장), 전교조가 설치는 통에 교장이 자살하고, 기업주는 노조와 시민단체 눈치 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이런 일들이 다 노 정권의 칼라와 무관치 않은 때문이라고 한숨이다.

나는 노 정권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국민들이 다수냐 소수냐를 수적으로 계량할 자료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 국가안보의 시침이 위기의 눈금을 향해 움직이고, 남한 내 친북 세력이 준동하고 있는 현상을 걱정하면서 무슨 사단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고 가슴 조이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노 정권에 대한 불안, 불신은 정권 핵심들의 언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좋게 말해 그들은 파격, 참신, 기발한 발상, 탈 권위를 내 건 ‘개혁 주창자들’이다. ‘386 세대’라 불리는 4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룬 이들이 실제로 보인, 또 현재 드러내고 있는 말과 행동은 파격이 파괴로, 참신이 미성숙으로, 기발함이 비 상식으로, 탈 권위가 신판 권위로 인식되는 빌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최근 국회 의사당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이 한 증좌다.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유 모라는 ‘개혁당파’는 의원 선서를 하는 날, 흰 면바지와 캐주얼 구두에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그의 당선을 위해 노 대통령은 민주당에 후보를 내지 말도록 작용할 만큼 소위 ‘코드가 맞는 정치적 동지’다. 이 해프닝을 놓고 ‘권위적인 국회에 탈 권위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박수가 나왔는가 하면 ‘기본과 상식이 없는 정치 쇼’라고 호되게 야단치는 소리도 들렸다.

정권 실세들의 ‘과격’과 ‘신 권위’


나 자신은 물론 후자 편이다. 복장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하고 때와 장소에 따라 지켜야하는 하나의 예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상가 집에 문상 갈 때 알록달록한 캐주얼을 입고 간다면 이를 제 정신으로 볼 수 있는가. 학교 졸업식 때는 사각모와 검은 망토를 입는 게 오래된 학교 전통이다. 이런걸 ‘캠퍼스의 권위’로 몰아 평소처럼 청바지에 스니커 차림을 하고 나타나는 게 ‘탈 권위’인가. 선거 운동 때도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유권자 앞에 나타난 사람이 의원 선서를 하러 나오면서 그런 복장을 한 것은 ‘개혁파 입네 하고 티를 낸 것’이외에 다름이 아니다. 나는 그 문제의 사나이가 전통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국회에 나왔다면 ‘사진발 받으려 저랬거니’하고 웃음으로 넘길 용의는 있는 사람이다.

또 다른 경우를 보자. 국가정보원의 3인자 자리에 노 대통령은 ‘개인적 신임이 두터운’ 서 모라는 대학교수를 앉혔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그의 ‘친북 성향’을 우려해 임명하지 말라고 건의한 인물을 ‘해 볼 테면 해 보라’고 밀어 부친 것이다. 한데 그는 연초 정권 인수위원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대취한 상태에서 일본 택시 기사를 폭행해 난리를 친 장본인이다.

여기서도 파격 아닌 파괴적 행태는 잘 드러난다. 가장 금도를 지켜야할 신분으로, 그것도 외국에서 폭력을 휘둘러 구속 직전 대사관이 개입해 무마됐다니 이게 젊은 개혁파가 할 짓인가. 노 대통령의 측근 두 명이 부정한 돈을 받았다고 해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음도 예사 일은 아니다. 그 중 한 명이 ‘부실한 검찰 수사로’ 풀려난 이 사건은 노 대통령 주변도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과 검찰이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는, 그래서 ‘권력의 성역’은 여전하다는 서글픈 사실을 말해 준다.

노 정권의 참신성과 개혁성의 현 주소는 어딘가,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서 던져야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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