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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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회장의 자격요건 통일식견에 화합 이룰 인품 겸비해야

2003-04-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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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 실세 줄대지 않는 ‘소신파’ 기대
1.5세, 여성들의 역량 살릴 비전 제시
위원들이 회장후보 복수 추천 바람직

오는 7월 출범하는 제11기 평통의 회장엔 누가 적임자일까. 6월께 회장인선 작업이 본격화되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인사회가 한바탕 시끄러울 것이다. ‘평통무용론’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자문역을 제대로 해내려면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향후 2년간 250명의 위원을 이끌 평통회장 후보에 대한 자질검증은 이래서 의미가 있다.


‘평통’ 하면 회장인선과 관련한 잡음이 퍼뜩 떠오른다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무난한 인물이라 해도 반대파들로부터 공세를 면키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다. 하물며 위원들과 커뮤니티로부터 신망을 얻지 못한 인사가 회장에 위촉됐을 땐 후유증은 그야말로 일파만파였다.
그러므로 평통회장은 커뮤니티의 화합을 깨지 않고 오히려 단단히 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게 첫째 자격요건이다. 이미 위원 추천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새나왔고 일부 위원이 ‘무자격 인사’가 위촉될 경우 평통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차기 평통회장이 위원들을 위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선과정과 결과에 불만을 품은 위원이나 탈락자들의 반발은 일정기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특히 기존위원 중 절반 가량을 확 바꾼다는 게 서울 평통사무처의 기본방침이고 보면, 연임을 희망했다가 탈락한 기존 위원들을 아우르는 일이 녹록치 않을 것이다. 이들을 ‘거추장스런 사람들’로 외면하지 않고 그 동안의 경륜을 통일자문역에 간접적으로 흡수하는 게 평통회장의 몫이다.

아울러 커뮤니티 단체들과의 유대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법적으로 대통령 자문기관이긴 하지만 멤버가 모두 한인들인 만큼 기존의 단체들과 소원하게 지내는 것은 화합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평통이 자문기관이므로 미시민권자의 동참이 문제될 게 없지만 한인들의 입장은 통일이슈에 연계된 북·미, 한·미 관계에 있어서 본국인과 다를 수 있다는 점과 차기 위원 중 40% 정도가 시민권자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회장의 유연한 지도력이 요구되는 근거이다.

둘째, 통일문제에 대해 식견이 있어야 한다. 요리를 모르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번창하기 힘들듯이 평통회장을 하려면 통일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역대 한국 정부의 통일정책을 숙지하고 그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서도 주관을 세워야 한다. 현 정부의 정책에 맹목적으로 지지를 보낼 필요도 없다. 대안을 제시하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적극적 자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비전을 한인사회에 공개해 평가받아야 한다. 커뮤니티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는 통일관을 갖고 회장자리에 앉으면 임기 내내 겉돌게 마련이다.

셋째, 평통회장이 위원들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발휘하게 할 수 있는 지 여부이다. 1.5세 및 40대 이하의 젊은층이 차기 전체위원의 22%를 차지하고 1.5세 가운데는 주류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이 3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인사회에 익숙지 않은 상당수 1.5세들이 평통이란 조직 내에서 소외되지 않고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한국 정부의 통일정책을 홍보해야 하는 만큼 평통은 주류사회와 전혀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이 때 주류사회를 잘 아는 1.5세 위원들을 적절히 활용하려면 이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분과위의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용인술이 필요하다.

또한 차기위원에 여성계 인사가 40명 이상 포함된다고 하니 이들의 잠재력을 통일자문에 건설적으로 활용하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대립보다는 화해, 공격보다는 타협이 절실한 한반도 평화통일 과정에 여성의 차분함과 섬세함이 톡톡히 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미 몇 차례 위원을 역임한 회장후보는 깊은 자성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 위원으로 있을 때 평통이 무엇을 했는지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한다. 과거 위원경력을 자랑하듯 내세우는 사람이라면 새 시대의 평통을 이끌 인물이 못된다. 회장 자리를 감투쯤으로 여길 게 아니라 평화통일에 작은 힘을 보탠다는 결연함이 결여됐다면 설령 위촉되더라도 결정을 물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본인, 평통, 그리고 커뮤니티를 위해 바람직하다.

다섯째,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본국 실세에 줄을 대는 사람이 평통회장이 되어선 안 된다. 이런 인물이 회장이 된들 자신을 낙점 해준 ‘곳’을 항상 염두에 둘 것이고 결국 소신을 펼 수 없음이다. 과거 ‘정치권의 백’으로 위촉된 회장이 본국 정치인들의 LA방문 때 지나친 영접을 한 것도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영사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영사관이 회장 후보를 복수 추천해 서울 사무처에 보내는 게 통례이므로 ‘영사관 눈치보기’는 자연스런 현상이 됐다. 이러다 보니 평통회장이 영사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소문이 도는 것이다. 평통 해외지역협의회 운영규정 2장 5조에는 “협의회의 회장은 당해 협의회 소속 위원 중에서 민주 평통의장(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추천권한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러므로 위원들로 하여금 회장후보를 복수 추천케 하는 방안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 추천된 후보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평통사무처가 ‘민의’를 수용하면 회장이 업무수행에 탄력을 받을 것이다.

평통은 헌법기관이며 LA 평통은 23개 해외지역 협의회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미주지역에서는 최대이다. 영사관과 상호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더라도 수직적인 형태가 아니라 수평적인 모양새를 띠어야 한다. 이름 깨나 알려진 단체장들이 평통에 다수 포함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인사회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

여섯째, 사생활이나 단체운영에서 깨끗해야 한다. 사업이나 단체 운영에 있어서 불법을 자행하거나 누가 보아도 명백히 커뮤니티 분열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곤란하다. 가려졌던 ‘구린 구석’이 드러나게 되고 급기야 평통 전체를 어둡게 덧칠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회장이 된다한들 과연 위원들이 그를 따르겠는가. 이런 인사는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후보에서 자진 사퇴해야 한다.

이상의 여섯 가지 기준을 무시한 평통회장 인선은 ‘평통무용론’을 이겨내는 것은 고사하고 두고두고 커뮤니티 불화의 싹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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