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라크 재건과 북한 무장해제

2003-04-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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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미국이 전후 이라크를 재건하는 데 있어서 유엔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당장 합의를 볼 수 있는 부분은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지 여부에 대한 조사를 유엔에 책임 지우는 일이다. 다시 말해 미 행정부는 이 책임을 유엔에 떠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 조사를 유엔에 맡길 경우 즉각적으로 유익한 2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반전 입장을 보여온 나라들과 관계를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란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를 계기로 미국이 북한 문제를 보다 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미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 조사 임무를 유엔에 넘겼다고 해서 미국이 자체 조사를 멈출 필요는 없다. 미군은 이라크 내에 있는 무기를 찾아내고 제어할 합당한 필요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두 달 전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유엔의 역할이 배제됐다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나라들은 유엔에 대량살상 무기 조사 역할이 주어지면 기뻐할 게 분명하다. 프랑스조차도 이 같은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유엔 사찰단을 이라크에 복귀시키는 일은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무기사찰을 허용하는 대신, 이라크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무장해제를 요구한 ‘유엔 결의안 1441조’를 북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에 종용할 수 있다.
북한은 유엔안보리의 개입을 ‘전쟁의 서곡’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정치적 수사가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1441조’를 북한에도 연장 적용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일이다. 이는 북한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대량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이와 같이 위험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 여러 나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유엔안보리 회원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북한의 직접 협상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 보다는 오히려 국제사회의 전적인 관심과 지원아래 이뤄지는 협상이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는 무력으로 이라크를 무장 해제시키는 것보다 유엔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이들 나라가 유엔의 역할을 강조하는 조치에 반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지난 8일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보다 큰 유엔의 역할‘을 논의하는 데 있어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대량살상 무기를 퍼뜨릴 우려가 있는 나라들에 일관된 접근법을 적용하는 것은 고사하고 유엔이 북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유익한 역할을 할 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을 유엔에 맡기는 것은 손해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한 득이 될 것이다.
국제사회 협조는 지구촌의 시급한 현안인 테러문제에 다시 초점을 모으게 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이제 모든 나라는 이라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국제 테러’의 도전을 새삼 인식해야 할 것이다. 스탠스필드 터너/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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