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그녀의 역사, 나의 추억

2003-04-10 (목)
크게 작게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좋아하였던 선생님은 미스터 에릭슨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도 계속 선생님과 교제가 이어졌다. 대학에 다니면서 주말에 집에 올적마다 선생님을 방문하곤 하였다. 영어와 언론을 가르치셨던 선생님 주위에는 항상 그의 제자들이 있었다.

나는 ‘패튼(Patton)’이라는 영화를 관람한 후에 미스터 에릭슨을 방문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가 아마 1970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스무 살이었고, 미스터 에릭슨은 오십 살쯤 되었지 않았나 싶다. 인상깊게 본 그 영화에 대해서 나는 선생님에게 그 영화에 묘사된 전쟁장면과 대사를 흥분하며 신나게 이야기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미스터 에릭슨은 웃으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영화에 묘사 된 전쟁이야기 줄거리를 잘 알고 있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인 패튼장군의 업적을 이야기하였다. 영화를 보았나 보다 생각하며, “선생님도 영화를 보셨군요?” 하고 나는 물었다. “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나는 패튼장군을 기억하지”하고 대답하였다.

나에게는 큰 쇼크였다. 그때 나는 나의 역사가 그의 일대기였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는 미스터 에릭슨이 1944년에 지방 신문의 종군 기자로 패튼장군을 취재하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후로 33년이 흘러 장면이 오늘로 바뀌었다. 얼마 전에 한국학강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토론 중에 스물 다섯 난 여학생이 한국역사에 관하여 권위를 가지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쉴새없이 한국전쟁에 관하여, 이승만 정권에 관하여 책에서 배운 해박한 한국역사를 설명하였다. 박정희 정권 이야기가 시작하면서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고조되었고, 박정희와 그의 정권에 대해 악담을 하였다.


쉬는 시간에 그녀가 이해한 한국역사에 코멘트 하면서 나는 새마을 운동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녀는 내가 한국역사를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놀라워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 그것을 읽어나요?”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오,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1974년에 한국에 살 때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다.”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나는 갑자기 미스터 에릭슨이 된 것이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스물 다섯 살 난 그녀의 역사가 53살 된 나의 일대기인 것이다.

나는 한국실정을 알기 위해 가끔 한국일보를 읽는다. 대부분 헤드라인과 사진을 보는 정도이지만 말이다. 한번은 한국신문을 흩어보고 있는 내 곁에서 아내는 신문에 난 한 여자를 가리키면서 말을 걸어왔다. “이 여자 예쁘지 않아요?”하면서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나는 신문 속의 여자 사진을 보면서 이 대화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그런 것 같다”라고 대답하였다. 아내는 웃으면서 “하리수”라고 말했다. “하리수는 남자로 태어났는데 지금은 성전환 하여 한국에서 유명한 여자가수이다”라고 아내는 내게 설명하여 주었다. “한국의 역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바뀌어지고 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몇 주일 전에 대학생인 조카가 우리 집을 방문하고 있다. 조카는 나의 아내의 남동생의 딸인데, 지금 스무 살이다. 그녀가 미국에 열살 때 왔으니까 미국과 한국에서 절반씩 산 셈이다. 나는 조카가 영어와 한국말을 본토인처럼 잘하는데 감탄하였다.

하루는 조카와 함께 바닷가로 산보를 갔다. 아내와 조카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동안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있다가 한참 후에 그들의 대화에 끼기 위해 말을 걸었다. 조카에게, “하리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조카는 웃으면서 “고모부도 그 여자를 알아요?” 하며 놀라워 하였다. 잠시 후 우리들의 대화는 한국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져 갔다. 대화도중에 나는 조카에게 “박정희를 아느냐?” 하고 물었다. 그녀는 “어디서 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녀의 추억이 다음 세대의 역사가 되었을 때 이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크리스 포오먼 <교육학 박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