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포법 구하기’

2003-04-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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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부모를 따라 이민 와 미국시민권자가 된 K씨는 주류사회 합동법률회사에서 일하던 촉망받는 젊은 변호사였다. 그런데 모국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K씨는 2년 전 한국의 한 법률회사에 취업했다. 세계화 바람이 불고 미국 변호사를 우대한다는 소식에 ‘국제문제 전문가’로 인정도 받고 서울생활도 해볼 심산이었다.

한국정부가 지난 99년 공포한 재외동포법에 따라 미주한인들의 본국 내 활동이 한결 자유로워지면서 K씨처럼 다양한 무대에서 뛰어보려는 인재들이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헌데 동포법이 위헌판결을 받았고 연말까지 개정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모두 보따리를 싸들고 돌아와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중국과 러시아로 이주한 한민족을 동포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 때문이다.

동포법 폐지는 취업, 상거래, 체류, 연금, 의료보험 혜택 등 동포들의 제반 권익을 저해할 뿐 아니라 국제화 시대에 인적 물적 교류를 막게 된다. 그러므로 해방 전에 러시아, 중국으로 건너간 동포들도 실질적인 ‘한 핏줄’로 대우함으로써 위헌 요소를 도려내고 잡음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손질해 동포법을 존속시켜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고 험산준령이 딱 버티고 있다. 우선 국민의 정서가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 부드럽지 않다. 반미시위 때 쏟아낸 감정은 미주한인들도 어느 정도 겨냥하고 있음이다. 정부 해당부처는 위헌판결에 대한 책임전가에 급급하니 이렇다할 진척이 없다.

청와대도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 대통령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386세대가 해외에 사는 동포들을 얼마나 아끼고 배려할 지 의문이다. “우리들이 국내에서 투쟁할 때 너희들은 외국에 나가 잘 지내지 않았느냐”는 편견이 ‘주류’를 있다고 하니 전향적인 정책은 기대난망이다. 그나마 의회가 있긴 하지만 국내 민심을 도외시할 수 없는 의원들의 외유 시 ‘립 서비스’가 역동적인 입법활동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은 우리의 문제이고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다. 이제 ‘동포법 구하기 작전’을 구사할 시점이다.

첫째, 동포법이 해외동포, 특히 미주한인들의 ‘집단이기주의’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인식시킨다. ‘잘 살면서도 혜택만 보려는 염치없는 사람들’이란 이미지로는 곤란하다. 동포법 존속 운동이 미주한인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해외동포 전체의 이슈임을 부각시킨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한인 대표들도 참석하는 세미나를 서울에서 개최해 동포법 존속이 엄연한 ‘민족적 현안’임을 환기시킨다.

둘째, 동포가 동포법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한국 위상제고에의 기여자라는 점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동포 고급 두뇌가 한국에 진출해 모국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동포의 한국 투자와 교류로 경제적 순기능을 낳고 있다는 것을 자료제시를 통해 명확히 한다.

동포법이 한민족 네트웍 형성의 기반을 조성하고 전세계에 한민족의 역량을 발휘하게 해 한국의 위상을 높일 것이란 점을 설득한다. 동포법이 한국정부의 세계화 전략에 ‘괜찮은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접근 채널을 다양화한다. 이 문제를 다룰 국회 법사위 소속의원들, 외교통상부 및 법무부, 노동부, 청와대 등에 대화창구를 튼다. 특히 동포법 존속에 우호적인 관계자들을 축으로 해 전방위 로비를 편다. 또 각 지역에 주재 하는 영사관에 동포사회의 여론을 알린다.


넷째, 동포법 존속 운동에 1.5, 2세들의 참여를 유도해 이들로 하여금 ‘인터넷 민의 전달’을 전담케 한다. 장관인선에까지 네티즌의 의견을 참고하는 정부이니 만큼 구두나 서면에 국한하지 말고 인터넷을 활용한 ‘신세대 작전’을 구사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동포법개정추진 재외동포연합은 전문가들의 자문과 동포사회의 여론을 수렴해 개정안 초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대안 있는 비판’은 동포법 살리기에 분명 힘을 더할 것이다.

박 봉현 <편집위원>
bong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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