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랍 혁명의 시작

2003-04-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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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신문을 읽으면 전 아랍권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얼핏 지나치기 쉬운 다른 면도 있다. 미국이 정말 처음 얘기한 것처럼 새롭고 자유로운 이라크를 건설할 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많은 아랍인들은 표현하지는 않지만 이라크 침공은 과거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임을 직감하고 있다. 미국 파워의 혁명적 면모가 그것이다. 아랍인들에게 블루진에서 ‘베이 워치’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는 항상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미국의 힘은 늘 친미적 왕과 독재자들의 집권 등 기존 체제 유지에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미국은 동구권과 라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지지하면서도 아랍권은 제외했다. 석유 확보와 이스라엘 보호를 위해 미국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첫 번째 걸프전 때도 쿠웨이트 왕정 복귀와 석유 공급이라는 목표가 달성되자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하는 데 그쳤다.


두 번째 걸프전이 아랍인들에게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이나 6일 전쟁 못지 않게 충격인 것은 그 때문이다. 아직 소수에 불과한 아랍 리버럴들은 아직도 미국이 아랍권 혁명을 위해 힘을 썼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라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크며 여기서 진짜 선거 혁명이 일어나면 이는 전 아랍권을 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은 조용한 다수 아랍인들에게도 충격이다. 이들은 미국이 혁명을 위해 칼을 뽑은 것은 알지만 이를 자기 나름대로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있다. 기존 체제를 뒤엎는 것은 아랍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랍권을 미국과 이스라엘에 굴복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아랍 언론의 주 논조가 바로 이것이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알 자지라 방송은 이라크 전쟁을 이스라엘의 서안 “점령”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죽은 이라크 인들을 “순교자”라고 부르고 있다.

카이로에 오래 살았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기브 마푸즈 전기작가이기도 한 레이먼드 스탁은 “아랍의 지식층은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아랍 미디어는 이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아무리 다른 쪽 주장을 얘기해 봐야 먹히지 않는다. 이라크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만이 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친미적인 이집트 관리들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재편하기 위해 칼을 뽑은 데 충격을 받고 있다. 오직 철권에 의해서만 통치할 수 있는 부족국가 이라크를 멋모르고 손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이들 생각이다.
누구 생각이 맞을 지는 향후 이라크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일이 잘못 되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전후 처리를 전쟁 시작보다 잘 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토마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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