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2003-03-29 (토) 12:00:00
즐거운 공짜
얼마 전에 한국일보 여성 칼럼 담당 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느 분이 내게 꼭 밥을 사겠다며 몇 차례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 만나자고 했다.
가끔... 글을 읽은 독자로부터 신문사로 연락이 오는 수가 있다. 신문사에선 내 연락처를 바로 주지 않고 그 쪽의 전화번호를 받아 내게 전해준다. 그렇게 해서 전해 받은 전화번호로 연락해 보면 어떤 땐 순수한 팬? 이기도 하지만 엉뚱한 이를 만나기도 한다.
몇달 전 교통위반에 관한 글을 썼을 땐 어떤 남자분과 통화를 했었다. 자기도 위반티켓을 받았는데 법원에 어떻게 벌금을 보내야 하느냐, 벌점을 면하려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어느 교통학교가 좋으냐를 물어보는 것이어서 웃었었다.
내 글을 읽는다는 비디오가게의 주인 아주머니가 한 개 슬쩍 더 넣어주는 서비스나, 서점의 주인이 알아보고 조금 더 할인해 주는 몇푼 안 되는 돈에 그만 황홀해지기도 한다.
신문을 읽던 떡집 아주머니가 자기의 마음을 대변하는 글을 썼다고 꼭 한번 들르라고도 하고, 마켓 정육부의 아저씨가 얼굴이 낯이 익다는 이유로 좋은 고기를 애써 골라주시는 걸 보면 가슴이 뭉클할 때가 있다. 한국으로 치면 시골동네 정도 사이즈의 이곳 한인타운에서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어서 살기에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잔재미들이 있다.
나를 알아봐 주었다는 으쓱함과 더불어 공짜로 조금 더 얻어 갖는 은밀한 즐거움을 즐기는 나는 ‘선천성 공짜 밝힘증’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만난 독자 분은 한인타운에서 문구점을 크게 하시는 분이었다. 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꼭 만나고 싶었다고 하신다.
6~7 년쯤 전인가… 동양화 배우러 다닐 때 재료를 사러 그 문구점에 자주 드나들었었는데 기억을 잘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 땐 남편 되시는 분이 주로 가게에 나와 계셨기 때문이란다. 작은 가게였으나 꾸준히 하다 보니 10여년 지난 지금은 아주 사업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Anderson & Sons 라는 고유 브랜드의 이젤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도 하신다고 한다.
아무튼 맛있는 점심도 대접받고, 예쁜 수첩과 아주 잘 써지는 펜을 한 박스나 선물 받았다. 글을 술술 잘 쓰라는 덕담도 듣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도 즐거웠다.
속물근성이 도져서 집에 와서 아들과 남편에게 으스대고 펜을 한 개씩 선물로 주었다. “마누라, 엄마 잘 만나서 생기는 개평이라는 거지…” 이러면서…
며칠 전 신문에서 수도전력국의 절수 프로그램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절수형 변기를 무료로 준다는 기사였다. 무료면… 공짜라는 이야기이니 웬 떡인가 싶어 연락을 했다. 공짜라면 그저 좋다. 의외로 간단히 변기 두개를 얻을 수 있었다.
수도세 영수증만 가지고 가면 내 운전면허로 주소 확인하고는 거저 주는 것이었다. 집안에 있는 화장실 수대로 무료로 준다는 변기. 화장실이 여럿 딸린 큰집에 살면 변기를 4~5개 얻어올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이래서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생겼겠지.
주일 밤엔 남편이 속해 있는 가스펠 밴드의 정기공연이 있었다. 공연 수익금으로 희귀병을 앓는 한국인 형제를 돕기로 한 공연이었다. 5세, 7세짜리 두 형제는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점점 멀어가다가, 수년내 몸이 굳어가며 죽는 병이라는 로렌조병에 걸렸는데… 볼티모어에 있는 그 병을 치료해 본 적이 있다는 병원으로 가서 실험해 보는 비용만도 일인당 60만달러가 든다고 한다. 적은 비용이나마 보태고 싶어서 하는 연주회라 더욱 의의가 있었다.
음악회를 위해 오랫동안 연습하고, 시간을 내고, 생업을 희생하기도 한 단원들은 자신들의 실력 발휘가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드럼 치는 목사님, 피아노 치는 목사님, 리듬악기의 전도사님, 트럼핏 부는 의사선생님과 우리 남편… 노가다, 트럼본 부는 단장인 치킨집 사장님과 무역업자인 일본인 슈 하야시까지… 직업을 초월하여 만난 23명의 열정적인 연주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은퇴하면 오지를 찾아다니며 무료 연주회를 하는 것이 가스펠 밴드의 꿈이라니, 늘그막엔 나도 동춘 서커스단을 따라다니던 밥 아줌마처럼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몇 주간에 걸쳐 공짜로 밥도 먹고 공짜 선물도 받았으며, 공짜로 변기도 얻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 대가없이 남에게 베푸는 것도 남편의 연주회를 통해 간접으로나마 체험해 보았다.
빈손으로 태어나 이날 이때껏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도왔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있던 때문이 아닐까?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갚으며 살아, 남들에게도 공짜의 기쁨을 많이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