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식당서 와인 고르기 ‘레드 or 화이트’부터 정하라

2003-03-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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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한 친구와 함께 좋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식당의 와인 리스트는 매우 훌륭했고, 나는 그 중 특별히 구미가 당기는 와인 세 가지를 고른 후 친구에게 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냥 처음부터 친구에게 어떤 와인을 마시고 싶으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알아서 골라달라고 답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2~3개로 리스트를 압축한 후 친구에게 의견을 묻는다.) 친구는 부르고뉴산 백포도주를 마시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1999년산 풀리니-몽라셰를 시켰다. 그 와인은 같은 샤도네로 만든 백포도주라고 믿기 어렵게 신맛과 달콤한 맛, 미네랄향, 과일향 등이 신선하게 잘 어울렸고, 같이 먹은 약간 느끼한 새우 요리와도 무척 잘 어울렸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고기, 해물등 먹을 음식에 맞게
가능한 안 마셔본 것 선택
전문성없는 식당서는 미국산을

이 친구는 나처럼 외식하는 문화를 즐기는데다 특별히 후각과 미각이 발달해서, 같이 음식을 먹거나 와인을 마실 때 매우 날카로운 평가를 하곤 했다. 나는 그에게 이제는 거의 와인에 대한 지식도 전문가에 가까운 평균 이상이라고 말하자, 뜻밖에도 그 친구가 아직도 식당이나 와인 스토어에서 와인을 고르는데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무슨 와인을 사야할 지 선뜻 결정을 내리기 힘든 때가 많고,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는 말을 듣고 도움이 될만한 와인 고르는 요령을 몇가지 알려주고 싶어졌다.


식당에 가면 우선 와인 리스트를 받아서 천천히 여유를 갖고 훑어보아야 한다. 혹시 웨이터가 주문을 받기 위해 재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 와인 리스트를 보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미리 얘기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는 백포도주를 마실건지 적포도주를 마실건지를 선택한다. 일행에게 무엇을 먹을 건가 물어봐서 정해도 좋고, 그 식당의 메뉴를 보고 스테이크를 전문으로 하는지 해물요리를 전문으로 하는지에 따라 정해도 좋다. 그런 다음 어느 지방산 와인을 선택할지를 정한다. 프랑스산으로 할건지, 캘리포니아산으로 할건지, 이탈리아산으로 할건지. 만약 이탈리아 요리 전문 식당이라면 이탈리아산 와인을 많이 구비해 놓았을 것이고, 그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전문성을 띠지 않은 식당에서는 미국산 와인으로 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특히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가 많은 종류의 미국산 와인을 다른 나라에서보다 싼값에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두꺼운 와인 리스트라도 약 20가지 이내로 선택의 여지가 압축되었을 것이다.

그 중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가격이 맞는 와인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어떤 전문가는 한 병에 20달러짜리부터 200달러가 넘는 와인들을 구비한 리스트에서, 100달러가 넘는 특별히 비싼 와인 서너병을 제외시키고 나머지 중에서 중간 가격보다 약간 아래인 40% 선의 가격의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와인이 두세가지로 압축되면 웨이터에게 이 세가지 중 정하려고 하는데, 이들에 대해 아는대로 얘기좀 해달라고 한 후, 웨이터가 가장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하는 와인으로 고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인이나 집에서 자주 마시는 와인은 피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외식하는 것은 특별히 즐거운 행사인데, 평소에도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마시는 것 보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거나 마셔볼 기회가 없었던 와인을 마시는 것이 그 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식당에는 마켓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소규모 부틱 와이너리의 와인이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런 와인을 마셔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약 20가지 이내로 선택의 여지가 압축되었을 때, 아는 와인들을 제외시킨 후 남은 와인들 중 주머니 사정에 맞는 와인은 아마도 1~2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와인 고르는 과정도 자꾸 하다보면 자신이 생긴다. 평소에 자주 집에서 와인을 마시다 보면 특별히 좋아하는 와인 품종과 지역이 생길 수도 있고, 그 경지를 넘어서서 전혀 모르는 와인을 마셔보고 싶은 모험심이 생길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선택의 폭을 더욱 좁히게 되므로 와인 고르기가 좀 더 쉬워진다. 특별한 날 특별한 식당에서 보낼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는 평소에 집에서 자주 와인을 접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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