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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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명의 식탁

2003-02-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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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오리건 사는 처남 집에 갔다. 식구들이 모이는 곳에 음식이 빠질 수 없듯이 이번의 방문도 마찬가지로 음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처남의 아내가 한국음식을 잘한다는 말을 아내로부터 들었고, 음식을 준비하는데 많은 신경을 쓰는 전문 요리사라는 말을 들었다.

동네 이름이 스위트홈인데 이름처럼 아름다운 작은 마을을 구경하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관광을 끝마치고 처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내에게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게 되어 기쁘다고 말하였다. 저녁식사는 미국음식이라고 아내가 귀띔 하여주었다. 나는 실망했지만내색하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주부들에게 힌트를 주고 싶다. 만약에 미국손님을 당신 집에 초청할 때 당신이 가장 잘하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하라.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한국사람 집에 초청되었을 때 미국음식보다는 한국음식을 훨씬 더 먹고 싶어한다.

저녁에 나온 미트로프 맛은 보통이었다 음식 맛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그녀의 정성이 더 고마웠다. 입장을 바꾸어 보자. 만약에 당신이 우리 집에 초청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내가 소문난 요리사라고 하자. 그런데 김치를 만들어서 대접하였다고 하자. 물론 나의 정성에 당신은 고마워하겠지만 내가 만든 김치가 당신 집에서 먹는 김치와 비교가 안될 것이다. 아마 당신은 내가 잘 만드는 미국음식을 훨씬 더 즐겼을 것이 당연하다.


여섯 명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장인이 한국에서 방문하고 있었는데 그의 나이는 여든이 넘었고 시골집을 거의 떠나지 않는 전통적인 분이다. 긴 식탁에 장인이 한쪽 끝에 앉으셨고 식탁 다른 한쪽 끝에 내가 앉았다. 내 옆 오른쪽으로 좌석 두 개가 있고, 왼쪽으로 좌석 두 개가 있으니까 여섯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이었다. 내 앞에 미트로프, 감자, 샐러드, 삶은 옥수수가 놓여 있었다. 장인이 앉아 계시는 쪽에는 김치, 된장국, 생선, 김, 나물 등 한국 음식이 놓여 있었다.

식구들이 저녁을 먹는 것을 보는 것은 하나의 교육이었다. 예상하였던 대로 장인은 미국음식을 먹지 않으셨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미국음식을 먹었다. 식사 도중에 나는 누구에겐가 김치를 패스하라고 하였다. 미트로프와 곁들인 김치 맛은 참으로 맛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아내는 된장국에 미트로프와 감자를 먹고 있었다. 처남의 아내는 빵 한쪽에 버터를 바른 것 이외에는 거의 한국음식을 먹고 있었다. 처남은 거의 미국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는 미트로프에 고추장을 곁들어 먹고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세살 난 쌍둥이 조카들이 음식을 먹는 것을 나는 호기심에 눈여겨보았다. 그들은 한국음식과 미국음식이 다른 종류의 음식이라는 것조차 인식치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미트로프를 된장국에 넣었고, 할아버지 앞에 놓인 한국음식과 내 앞에 놓인 미국음식을 골고루 손가락으로 집어먹었다. 그들이야말로 양쪽 세계에 한발씩 걸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양쪽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도 어제 저녁과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었다. 장인은 어제 앉으셨던 그 자리에 앉으셨고 어제 저녁에 먹었던 똑같은 음식이 장인 앞에 놓여 있었다. 한국 살 때 같은 음식을 매일 먹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어떻게 아침, 점심, 저녁을 똑같은 음식으로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아침에는 달걀과 베이컨, 점심에는 샌드위치, 저녁으로는 고기와 감자를 먹는 습관에 길들어진 나는 날마다 밥을 먹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침식사로 나에게는 팬케이크를 주었다. 어제 저녁에 미트로프를 먹으면서 김치를 먹었다. 김치와 미트로프는 적당한 콤비로 맛있었는데, 팬케이크에 김치를 곁들어 먹는다? 어느 누가 그처럼 이상한 콤비로 음식을 먹겠는가? 쌍둥이들은 팬케이크에 시럽을 듬뿍 쳐서 한 입 먹고, 된장국을 떠먹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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