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포 체험

2003-02-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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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중에는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오랜 세월 짝사랑해 온 사람과 교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무리 짧더라도 얼씨구나 하며 받아들이겠지만 원수처럼 미워해 온 사람과 만나라고 한다면 촌음이라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것이다.

이렇듯 ‘호불호’에 따라 갈리지만 체험은 직접적이든 우회적이든, 크든 작든 교훈을 준다.


70, 80년대 대학생들이 한두 번씩 경험했던 체험 중 ‘농활’이란 게 있었다. ‘농활’은 농촌에 가서 김 매고 벼 베다 손도 베어보고 거머리에 물리기도 하면서 농촌의 힘든 하루 하루를 피부로 느껴보는 자발적인 현장학습이다.

또 군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병영견학이 한때 인기를 끌었다. 여대생들이 부대에 입소해 군복 입고 이를 악물면서 유격훈련을 받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 때’를 기억하면서 역경을 감내할 수 있도록 심신을 단련할 요량으로 제 발로 뛰어든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조국을 전혀 모르는 1.5세나 2세들이 한국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 ‘뿌리’를 배우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반해 가까이 하거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체험도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이 체험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당하지 않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겪고 있다. 간접체험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리얼하게 와 닿는 ‘공포 체험’이다. 공포 체험은 반복할수록 대담해진다는데, 최근 일련의 체험은 두려움만 키우고 있다.

테러에 대비해 워싱턴 DC 인근을 요새화 하다시피 하고 주요 지역의 사회기간 시설을 경계했지만 정작 주민들을 괴롭힌 것은 미 동북부를 강타한 폭설이었다. 이로 인해 30여명이 숨졌으니 눈을 부라리며 경계하던 비행기 테러는 잠잠하고 소리 없이 닥친 ‘눈의 테러’에 허를 찔린 셈이다. 이처럼 예기치 않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난다. 평시에도 그런데 전시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카고 나이트클럽에서는 지난주 터무니없는 압사사고가 있었다. 손님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자 종업원이 이를 말리려고 최루성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클럽 안은 갑자기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20여명 깔려 죽었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하나밖에 없는 출입구로 빠져 나오려다 희생이 커졌지만 테러에 대한 공포로 이 사고가 대형 참사로 비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테러범 없는 테러’로 멀쩡한 선남선녀들이 처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로드아일랜드주의 한 나이트클럽에서는 대형 화재가 발생해 300여명이 불에 타 죽거나 다쳤다. 수사 당국이 테러 가능성을 일축하고 단순 화재로 단정하자 테러 공포에 억눌려 온 많은 사람들은 “불행 중 다행”이라며 자위했다.

조만간 미 전폭기의 공습으로 바그다드의 사원, 공장, 아파트 등에서 양민들이 불에 타 죽게 될 공산이 크다. 이 때도 “테러 때문이 아니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지구촌을 무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펴고 있고 미군이 자신을 테러범으로 여기지 않을 테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올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뉴욕 스테튼 아일랜드 지역 정유공장에서 불이 나 지역 일대가 화염에 휩싸였을 때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은 테러와의 연계가 없다는 보도가 나오자 안도했다. 그러나 수세에 몰린 후세인의 자포자기 행동이나 미군의 뜻하지 않은 오폭으로 정유시설이 파괴된다면 우려는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


메릴랜드주의 토이자러스에서는 지붕이 붕괴해 매장에 있던 어린이 등 손님과 종업원들의 안위가 걱정됐었다.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붕이 주저 않은 것이고 세살배기 소년 등 9명의 손님이 다쳤을뿐 사망자 없는 사고였지만 처음에 테러 가능성을 떠올리는 게 이젠 ‘기본’이 됐다. 장난감 가게에 드나들 이라크 어린이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의약품이 부족해 병상에 누워 있는 어린이들이 공습으로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닥칠 위협의 싹을 지금 잘라야 한다는 게 부시와 그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의 명분이다. 그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무고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이 명분에 가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며칠 새 잇따라 겪은 ‘공포 체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bong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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