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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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

2003-02-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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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아빠

무늬만 홀로인 유학생들의 서울 아빠들, 그들의 외로움은 가끔 수위를 넘어 심심찮게 긴 소문을 만들어 낸다. 1년차-”나는 괜찮아, 당신과 아이들이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드오.” 2년차-”조금 힘들어, 밥 사먹기도 지겹고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어.” 3년차-”아주 많이 힘들어. 그냥 다 접고 서울로 돌아와.”
하지만 대학 입시를 얼마 남기지 않는 엄마들은 호소를 어쩔 수 없이 무시한다. 4, 5년 지나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돌아갈 때쯤 서울에 있는 기러기 아빠-“됐어요, 그냥 이렇게 떨어져 삽시다.” 띠띠띠(전화 끊어지는 소리) 선배 유학생 엄마가 충고로 들려줬던 실화다.
두개의 가정을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가장의 힘겨움과 혼자서 외로움을 삭혀야 하는 그 무엇이 그들을 정녕 못 견디게만 하는가? 아니다, 대다수의 아빠들은 현실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자랑스런 내일이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당신들로 하여금 현실을 견디게 한다고 한다.
유난히 긴 비가 많은 서울의 여름 장마 어느 날 남편은 매콤하고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 우산을 받쳐들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다 결국 끝내 못 먹고 집으로 돌아와 배가 고팠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팠던 것이라고…
가끔 식구와 허름한 돼지 뼈다귀 해장국집가서 뼈에 붙은 살을 찾아내 서로 먹여주었던 옛날의 가족의 향기가 너무나 고팠던 거라고 전화에다 이야기하며 울먹거렸다. “군대생활을 견디듯 약간 더 견뎌낼 테니 임무 마치고 잘 돌아오시오, 기다리겠소.” 명령하듯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남편은 미국에 몇 번 다녀가더니 “도대체 미국은 한국 남자 살기에 너무 좁아(?!)”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자식 교육 때문에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것은 말도 안돼” “뭐 얼마나 자식 잘 만들어 보겠다고” “지 팔자 나름이지” 하지만 그 조그만 배려, 그 길지 않은 인고의 차이가 개인은 물론 가족, 크게는 국가적으로 나아지리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유태인의 철통같은 자식 교육에 미국인들도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판에… 크게 키워 당당하게 역사를 건사해 나가는 2세를 만들고자 처자식을 보내야 하는 기러기 아빠의 외로운 노래 소리가 멀리 서울에서 샛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배경순/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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