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지내고 보름만에 찾아오는 정월대보름은 설보다 훨씬 가볍고 즐거운 명절이었다.
다른건 몰라도 평소 구경 못하던 호두며 잣을 직접 까먹을 수 있었고, 벗겨낸 잣중 가장 실한 놈을 바늘에 꽂아 불을 붙이고 식구끼리 누구 잣이 더 오래 타나 시합하는 재미가 있었다. 휘영청 엄청나게 큰 달이 동산위로 떠오르면, 영문 모르고 들뜬 아이들은 어른들 쫓아 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했고, 여기저기서 깡통에 든 불빛이 휘휘~ 동그랗게 돌아가곤 했다.
오곡밥에 아홉가지 나물을 해먹으면 일년동안 건강하다는 정월대보름.
어머니들이 가을에 손질해 겨우내 말려놓은 호박이나 가지, 시래기, 묵은 나물들을 대보름날 볶아 먹으면 없어진 입맛이 살아나고 일년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정식대로 하자면 대보름 전날인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장수를 비는 오곡밥이나 약식을 지어먹고, 아침에는 귀밝이술(이명주)을 마시며, 새벽에 부럼을 까는 것. 잣·호두·밤·땅콩같이 단단한 건과를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무는 부럼은 깨물 때 일년동안 무사태평하고 이가 단단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하는 풍습이다.
이번 정월대보름 음식 취재는 복이 넘쳤다.
산수당 주인 헬렌 한씨가 비장의 오곡밥과 영양떡 레서피를 공개하겠다고 해서 얼른 날을 잡았더니, 라크레센타의 주부 이은숙씨가 갖가지 나물과 전으로 상다리가 휘어지는 대보름 상을 차려주어 어느 때보다 풍성한 명절음식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이민생활에 잊혀져가는 우리 명절, 그 먹거리 전통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지켜보는게 좋겠다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