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낡은 유럽과 새 유럽

2003-02-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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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프랑스와 독일로 대표되는 ‘낡은 유럽’과 동구권의 ‘새 유럽’을 구분하려 했다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의 관찰은 옳다. 그러나 다른 이유에서다.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에 관해서는 유럽 어디서나 이를 지지하는 리버럴과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그의 발언은 유럽의 중심이 동진하고 있음을 지적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전쟁이 현실적으로 현실성이 없는 현 유럽에서 국력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이다. 내년 유럽연맹이 10명의 추가회원을 갖게 되면 2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지구 경제활동의 20%를 차지하는 4억 5,000만명을 포함하게 된다. 유럽연맹이 동쪽으로 움직이면서 장차 경제 활동의 중심도 동유럽의 구 공산권 국가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향후 10년간 유럽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과 소득 증가는 이곳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 각국은 젊고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강한 동구권에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곳이 중국보다 더 전망이 좋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새 유럽’의 매력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 나라 국민들은 지난 40년간 공산 치하에서 박탈당해온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기를 갈망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당연시되는 좋은 차와 멋진 가구 등이 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동구권에서 일고 있는 샤핑 열기는 50년대 독일의 경제 부흥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시장 진출뿐 아니라 값싼 노동력도 미국과 유럽기업의 동구행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폭스바겐이나 GE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프랑스와 독일을 떠나 동유럽에 공장과 보급센터를 차리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경제 강국이지만 좋지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나라가 대표하는 ‘낡은 유럽’은 고령자들이 사는 산업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수십 년에 걸친 낮은 출산율로 이들은 세계에서 고령자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이다. 향후 30년내 독일인 2명중 1명은 은퇴연령에 속하게 된다. 광범위한 사회복지 제도와 높은 인건비(시간당 35달러, 미국은 16달러) 때문에 투자가들은 독일을 기피하고 있다.

세금이 너무 높아 실수령액은 봉급의 3분의1도 안 된다. 거기다 잘못된 통일정책 때문에 매년 1,000억달러의 거금이 실업률이 30%에 달하는 구 동독지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한 때 세계 최고의 과학자와 철학자를 배출하던 독일대학 시스템은 이제 수준 이하다. 교수들은 학생과 잘 어울리지 않으며 과밀학급에 강의 수준도 형편없다.

학생들은 졸업해 봐야 취직도 안 되기 때문에 30대 후반까지 될 수 있는 한 대학에 붙어 있으려 한다.프랑스 교육 제도는 더 엉망이다. 엘리트 학교를 나와야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에 나머지는 희망이 없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기회를 찾아 프랑스를 떠난다. 수만명의 프랑스 청년들이 런던이나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투자 금융가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활약하고 있다.

프랑스가 활력을 찾으려면 이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그러나 중과세와 까다로운 규제, 동맥 경화증에 걸린 사회구조 등이 이들의 발길을 막고 있다. 이같은 두뇌 유출의 최대 수혜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같은 미국 기업이다.

처음 유럽연맹이 동구권에 문호를 개방했을 때 전문가들은 동구 고급 인력이 유출될 것을 우려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더 경제발전 기회가 많은 동구에 남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있다. 유럽의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는 경제적 활력을 살려야 하는데 그것은 복지주의에 찌든 서유럽보다는 공산주의의 재 속에서 일어나는 동유럽 쪽이 더 가능성이 크다.

윌리엄 드로즈디액/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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