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잔의 명가 ‘리델’(Riedel)

2003-02-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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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종류따라 잔 달라야 제맛

와인의 종류에 따라 잔의 모양뿐만 아니라 사이즈도 각기 다르다. 잔의 크기에 따라 향의 강도와 질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여러가지 선물을 받았지만, 그 중 가장 나를 기쁘게 하고 놀라게 했던 것은 리델 와인잔 6개 세트였다.


와인을 좋아해서 가끔 같이 마시는 분이 선물한 것이었는데, 정작 본인도 비싸서 못 사서 쓰는 것을 뻔히 아는 마당에 내게 선물을 하였으니
그 감격이 더하였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진열된 단 하나의 와인잔이
리델사가 1958년 개발한 버건디 그랑 크루(Burgundy Grand Cru) 와인잔이라는데, 같은 회사에서

제조한 잔이 내 집에도 6개 셋트나 생긴 것이다.
조심조심 잔을 씻어서 수건으로 말린 후 와인잔이
진열된 캐비넷을 열고 그동안 아끼며 사용했던
와인잔들을 뒤쪽으로 치우고 제일 앞쪽에
신주단지처럼 모셔놓았다.
입술에 닿는 얇은 크리스탈 잔의 감촉도 좋고,
와인의 맛도 더 풍만해진 것 같았지만,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와인의 향이 다른
잔에서 마실 때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지고
뚜렷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델(Riedel)사는 오스트리아의 와인잔 메이커이다. 1756년 5월17일 보헤미아에서 창립된 리델사는 창업주 요한 레오폴드 리델이래 10대째 계속 패밀리 내에서 가업을 이어왔으며, 철저하게 유리만을 만들고 있다. 리델사는 각기 다른 품종의 와인을 위하여 각기 다르게 제작된 와인잔을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발 과정에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와인맛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들을 많이 찾아다니며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잔을 만든다고 한다. 대부분의 와인잔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자인인데 비해, 리델사는 1950년대에 이미 기능을 위한 모양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니 그 선구자적 안목과 계속 이어온 장인 정신이 놀랍다.

한 예로 1997년 일본의 후쿠미쯔야(Fukumitsuya)사가 리델사에게 일본 정종을 위해 가장 적합한 잔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리델사는 1998년부터 약 60가지 모양의 잔과, 100가지가 넘는 디자인으로 전문가들에게 여러가지 일본 정종의 맛을 보게 하였다. 30여명의 일본 정종 전문가와 45명의 다이긴조 정종 메이커의 의견을 종합하여 리델의 기술로 1999년 탄생한 잔의 이름은 다이긴조(Daiginjo)이다.
리델의 와인잔 모양은 그 와인잔이 담아내는 포도주 종류에 따라 결정되는데, 철저하게 와인을 마시는 사람의 즐거움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다.

와인을 마실 때는 먼저 눈으로 보는 빛깔, 코로 맡는 향, 그리고 혀에서 느끼는 맛을 즐기게 된다. 우리의 미각은 와인잔이 입에 닿는 순간, 와인이 혀에 닿는 순간, 최대한 긴장하여 와인의 온도, 느낌 (texture), 그리고 맛을 감지한다.


와인잔의 모양은 이러한 색, 향기, 맛의 조화를 극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잔의 둘레, 크기와 모양, 잔의 두께, 그리고 잔 끝부분의 처리에 따라 와인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와 처음 혀의 어느 부분에 닿는가가 결정이 되는데, 우리 혀에는 신맛, 단맛, 쓴맛 등을 느끼는 부위가 각기 다르므로 어느 부분에 처음 와인이 닿도록 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색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와인잔은 무색이며 투명해야하고, 모양이 최대한 심플하고, 잔이 얇아야하며, 잔 끝이 둥글게 말리지 않고 잘려져서 매끄럽게 다듬어져야하고, 계란모양이어야 하며, 크리스탈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리델사는 믿는다.


크리스탈로 만드는 것은 투명도가 높은 크리스탈이 와인의 색을 그대로 눈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때문. 잔의 끝이 둥글게 말려있으면 와인이 부드럽게 입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고 역류하게 하므로 신맛과 거친맛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와인의 종류에 따라 잔의 모양뿐만 아니라 사이즈도 각기 다르다. 잔의 크기에 따라 향의 강도와 질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잔이 클 수록 와인이 잔 안쪽 벽에 붙어서 증발할 면적이 넓어지므로 강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적포도주는 큰잔에, 백포도주는 중간크기 잔에, 독주는 작은 잔에 마셔야 알콜이 아닌 과일의 향을 많이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와인을 잔에 얼만큼 따라야 하는가도 매우 중요한데, 백포도주는 한번에 3온스, 적포도주는 4~5온스, 그리고 독주는 1온스를 따르는 것이 알맞는 양이라고 리델사는 권한다.

■ 가격
‘소믈리에’시리즈 최고가

리델잔은 입으로 불어서 만든 수제품 글래스 ‘소믈리에’ 시리즈가 가장 비싸고 31개의 다른 종류 글래스가 있다. 웹사이트 www.iwawine.com 에서는 ‘보르도-카버네’ 소믈리에잔 (30온스)을 개당 56.95달러에 세일하고 있다. 세일 전 가격은 개당 89달러.

그 다음으로 비싼 것은 ‘비넘’(Vinum) 시리즈인데 21개 종류가 있고, 기계로 만든 글래스이며, 소믈리에와 마찬가지로 24% 크리스탈 글래스이다. iwawine.com 에서 ‘보르도-카버네’ 비넘잔(22온스) 2개 셋트를 39.95달러에, 4개 셋트는 62.95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또한 보르도 1개, 부르고뉴 1개, 몽트라셰-샤도네 1개, 소비뇽 블랑 1개로된 선물세트는 79.95달러이다. 그 다음은 ‘우베튀르’(Ouverture) 시리즈인데, 총 6개 종류가 있고, 기계로 만들었고 적포도주용 글래스(Red Wine) 4개 셋트가 34.50달러이다. 그 외에도 베이직(Basic) 시리즈, 와인(Wine) 시리즈, 비넘 익스트림(Vinum Extreme) 시리즈 등이 있다.

■관리스템 잡고 닦으면 뒤틀려

입으로 불어서 만든 리델 크리스탈잔은 잔의 면이 연하고, 쉽게 상처 나며, 외부의 향을 더 빨리 빨아들이기 때문에 특히 잔의 크기가 더 클수록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리델잔은 미지근한 물에 최소한의 세제를 사용하여 씻은 후 흐르는 물에 깨끗이 헹구어야한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기 전에 끓는 물의 수증기를 입히면 좀 더 투명하게 반짝인다. 물기를 닦을 때는 왼손으로 잔을 잡고 오른손에 수건을 들고 닦는데 잔의 몸통 대신 스템을 잡으면 잔을 뒤트는 효과가 있어서 깨지기 쉽고, 수건을 억지로 잔 속으로 밀어넣어도 잔이 깨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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