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철 칼럼 나를 찾아서
2003-02-01 (토) 12:00:00
사나이 마음(父情)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못난 자식놈 때문에 그동안 선생님에게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이제 제가 몸이 약해서 양로원에 입원해야하므로 이제는 아들을 데리고 더 이상 올 수가 없습니다” 팔순이 넘는 백발 노인이 굵은 주름진 얼굴로 깊게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 인사를 하신다. 이미 몸이 허약해져서 겨우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10여 년간 다니던 사무실에 일부러 인사하러 오신 것이다. 그는 지금 40이 넘은 큰자식의 손을 붙들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오다가 이제 그 스스로 양로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들이 정신분열증을 앓기 시작하고, 증세가 심할 때는 극도로 흥분하고 간혹은 가족이나 아버지에게까지 폭행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늘 인자하게 자식을 돌보며 꾸준히 치료를 계속했다. 이사를 하고 난 이후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사무실까지 오는데 아침 7시에 떠나서 10시나 11시에 도착하는 때도 많았다. 그리고 사무실에 올라와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놈이 빌딩 현관문까지 왔지만 엘리베이터 타기 싫다고 사무실에 올라오기 싫다고 하니 어쩌면 좋습니까?”하고 사죄를 하는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올라오지 않으면 제가 내려가야지요”하고 몇 층을 내려가서 아들을 만나 보아주는 때도 여러 번 있었다.
한때는 큰 사업도 하셨고 독립군을 도와 일한 적도 있다는 이 노인의 지극한 자식에 대한 정성은 볼 때마다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자식을 남기고 양로원으로 가는 팔순백발노인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자기의 건강에 대한 염려는 조금도 비추지 않고, 그저 한마디 남기고 간 말은”왜 이런 일이 제게 생깁니까?”도 아니고, “제가 없어도 잘 부탁드립니다” 도 아니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그 한 마디 뿐이었다. 그 후 이 환자는 다른 가족의 보호로 치료를 받으러 왔고 아버지가 집을 떠나신 이후로 지성이면 감천인가 아들은 원래 착한 성품으로 되돌아왔고, 표정도 많이 밝아지며, 남들과도 원만히 지나게 되었다. (정성을 들인 환자나 자식은 한 때 잘못되어도 대부분 나중에는 결과가 좋다.)
자녀들의 문제로 고생하는 부모가 많다. 진료실에 들어올 때 부모의 표정을 보면 그 환자가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병든 자녀를 가진 부모는 어떤 의미로 환자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끼며 지낸다.
환자뿐만 아니라 훌륭한 자녀교육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많은 부모님들이 있다. 위험한 리커스토어나, 쉬는 날 없는 세탁소, 멀리 멕시코로 다니며 장사를 하는 스왑밋 상인, 빌딩청소, 그 외 궂은 일을 자존심을 버리고 오직 자식 교육을 위해서 힘들게 노력하는 부모들이 많다.
“자기 자식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킨다고 힘들다고 말하면 벌받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어려운 환경, 불법체류자의 신분, 불의의 사고, 가정불화, 질병 등 여러 어려움에도 혼자 참고 삭이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부모들이 많다.
한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한다. 어떤 때 눈물이 나면 가족에게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 하염없이 하이웨이를 달리며 울기도 하고, 해변가에 나가서 정처 없이 앉아있다 돌아올 때도 있고, 호수에 홀로 앉아 이민의 슬픔을 삭이기도 한다고.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으로 여기며 묵묵히 홀로 고통을 지고 가는 자식을 생각하는 사나이의 마음.
여러 아버지들의 힘든 모습을 보며, 그러나 꿋꿋이 견뎌내는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부모님들이 있는 한 우리사회의 앞날은 밝다. 모든 이민부모님들의 건투를 빈다.
<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