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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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핵 위기의 재판

2003-01-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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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김일성이 국제 사찰단을 추방하고 영변 핵발전소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군사공격과 유엔에 의한 대북 경제제재를 검토했다. 북한은 이를 자국에 대한 전쟁선포로 간주했다. 미국과 한국군이 합치면 전세는 뻔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죽었을 것이다.

지금도 상황이 유사하다.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은 핵 공격을 않겠다는 보장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당시 나는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 미 정부의 승인아래 북한을 방문했다. 김일성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고 국제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핵 공격 포기, 경수로 2기 건설지원, 중유공급 등을 확약 받았다.

아울러 김일성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했고, 1992년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라 이산가족 남북왕래를 수용했다.
또 남북한 군대 규모를 각각 10만명 수준으로 줄이고 미군도 같은 비율로 감축해 긴장을 완화하자고 제의했었다.

아무튼 약속된 경수로가 건설되지 않았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이 그 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한국과 북한에 대한 관계를 변화시켰다.


노벨상까지 받게 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거부하고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몰아세웠다. 김정일을 피그미라고 칭하고 미국은 동시에 2곳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으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는 북한의 미사일을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다음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북한이 핵 개발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미국은 중유 공급을 중단하고 협상을 거부했다. 국제 사찰단은 추방됐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 무장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북한에 핵무장을 하지 않아도 안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확인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 양측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는 국제 포럼이 열려야 한다. 상호 이견을 좁혀야 한다. 1994년 제네바 협정의 틀이 다시 쓰일 수 있다. 북한은 핵 개발을 완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가침 선언을 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잘 해결되고 남북 긴장완화 후속조치가 취해지면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미 카터 전대통령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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