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당선자는 요즘 걸음걸이 교정을 받고 있다. 좌우 어깨를 들먹거리며 걷는 모양새가 ‘대통령답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란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도 직설적이다. 선거 때 자신을 도운 ‘노사모’라는 단체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놀랄만한 표현을 썼다. “지난 선거에서 나와 여러분은 대형사고를 친 공범이니 앞으로도 잘 도와달라.” 그 ‘대형사고’라는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정부관리들이 나의 선거공약을 놓고 이건 되느니, 안 되느니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힘이 들어간 ‘경고’다. 그래선지 요즘 관가는 숨소리를 죽이고 있다.
나는 승리자를 위해 ‘용비어천가’를 읊조리는 대열에 참가할 생각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TV와 신문 그리고 주변에 모여든 공신들과 기회주의적 아부꾼들이 입을 모아 당선자의 인생역정을 찬미하고 있는 것으로써 넘치고도 남음이 있는 판에 뭘 기웃거리겠는가. 오히려 영광의 월계관을 쓴 승리자에게 쓴 소리하는 아웃사이더도 더러는 있어야 구색이 맞지 않겠는가.
미국을 공부해야 할 분명한 이유
첫째, 노 당선자는 교양과 품격과 전인적 인격에 관해 천착하길 바란다. 당사자로선 혹 이런 주문을 받는데 대해 불쾌감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험로만을 걸어온 자수성가형 정치인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정규 고등교육만이 전인적 인격체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은 국가 지도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세상이 복잡다기해진 이 시대,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에겐 전인격적 덕목과 지식이 요청된다. 노 당선자가 주경야독하는 자세로 동서양의 문학 역사 고전을 섭렵하고 인격의 지평을 더욱 넓히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할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둘째, 미국 공부를 많이 하기 바란다. ‘미국 수업’은 한국이 처한 국제 환경을 익히고 국가 장래를 헤쳐나가는데 있어 이론이 아닌 현실을, 낭만이 아닌 공리를 터득하는 작업이다. 그가 후보자일 때, “미국 한번 안간 게 무슨 잘못이냐?”라든가 촛불시위를 옹호하면서 “반미면 어떠냐?”라고 논평한 것 자체도 큰 문제였지만 청와대에 앉아서까지 그런 식으로 미국을 본다면 이는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유럽 중국 일본 등 강호들조차 미우나 고우나 초강대국을 화나게 해 가지고는 자국에 이득될 게 없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친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미국의 도움이 어느 나라보다 필요한 한국에서 ‘반미’ 구호가 판을 치고 있으니 이게 보통 일인가. 노 당선자는 취임하자마자 워싱턴으로 건너가 미국을 움직이는 주류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귀를 활짝 열고 들어라. 그리고 세계 초대강국의 ‘힘’을 실감하고 돌아 오라. 국익 앞에서 민족주의나 자존심은 접어야 한다.
셋째, 국민에게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선거가 끝난 지금 내로라 하는 전문가니 학자니 하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선거 때 내건 공약은 일단 잊고 새로 시작하라.”-이것이 그들의 주문이다. 수도권 이전, 정부 주요 공직자 국회 청문회, 7% 경제성장, 정통부 대수술, 권력형비리 조사 등은 노 후보가 내세운 주요 공약들이다. 현실성이 없는 공약들은 없던 걸로 하라는 주문인데 그렇다면 이 공약을 보고 표를 찍은 유권자의 권리는 뭐며 사탕발림의 빌 공자 ‘공약’을 해도 눈감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슈거 코팅된 말에 솔깃했다가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결국 ‘제2의 DJ’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공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아예 잘못된 공약을 수정하거나 폐기할 요량이라면 솔직히 표 때문에 허언을 했노라며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부터 해야한다.
전임 정권 부패척결이 ‘노무현 개혁’의 첫걸음
넷째, 전임 정권에서 일어난 각종 부정부패 비리를 추상 같이 단죄하라. DJ 정권의 부패는 해도 너무했다는 게 국민들의 분노다. 아들들에 가신에 측근에 고위 권력자들에 안 나선 자 없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해먹은 권력형비리를 ‘의리’에 얽매어 덮고 넘어 간다면 노 정권의 개혁은 실패할 게 뻔하다. 비록 집권하는데 부채를 졌다 하더라도 노 당선자는 그런 소의는 접고 대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
문제된 대북 불법지원 등 국민적 의혹 사건도 한 점 감춤이 없도록 밝혀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탕평 인사를 실행에 옮기라. 160여년 전 붕당의 혈투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조선 천지를 탕평 인사로써 국가개혁에 성공한 정조대왕의 일대기(정조실록)를 노 당선자가 탐독하길 권한다. 자신에게 90% 이상의 표를 몰아준 호남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니 꺼져가던 대권 불씨를 지펴준 20~30세대에 대한 ‘고마움’을 접지 못한다면 그는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이다. 당신의 당선 소식에 식음을 전폐했다는 50~60세대의 통한은 누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새로 등장한 이 나라 주역들에 대해 그들은 불안과 울분에 싸여 있다. 북의 김정일에 대해선 우정을, 우리의 전통적 동반자인 미군은 나가라 하는, 그래서 나라 장래를 걱정하는-이런 저런 세상풍파를 헤쳐 나온 그네들의 이유 있는 개탄인 것이다. 노 당선자의 귀는 얼마나 클까, 그게 궁금하다.
안영모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