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이야기 포도

2003-01-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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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품종 따라 분류

품종 24,000가지…다량 제조 9개 정도뿐
미국산 레이블엔 종류를, 유럽산 생산지 기입

와인에 처음 관심을 갖고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 제일 난감했던 게 와인 스토어에 가서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 지 모를 때였다.
레이블에 쓰여 있는 단어들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 투성이었고, 영어로 된 단어들도 다 생소해서 뭐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 와인에 대해 배울 기회가 생기면서 와인은 포도의 품종에 따라 분류가 되며, 미국에서 생산된 와인은 거의 대부분 레이블에도 포도의 품종을 써넣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은 포도의 품종이 아닌 생산 지역 이름이 포도원 이름과 함께 들어가지만 어떤 지역에서 어떤 품종의 포도를 재배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 또한 마찬가지로 이해하기가 수월해진다. 와인을 기초부터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 포도의 품종과 이에 따른 와인의 종류에 관해 2회에 걸쳐 쓰고자 한다. 와인은 정말 아는 만큼 맛이 있고, 알면 알수록 잘 즐기게되는 술이다.
포도의 품종은 2만 4,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국가나 지역에서 서로 비슷한 품종에게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그러한 것을 제외하고 나면 약 5,000개 정도의 서로 다른 포도 품종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5,000개의 포도 중에서 판매 가능한 양의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는 약 150여종에 불과하며 그 중에서도 클래식이라 불릴 만큼 예로부터 많은 양의 포도주로 만들어지는 포도 품종은 9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포도주를 구입할 때 이 9개의 포도 품종에 대해서만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구입하는 절차가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이 9개의 포도는, 백포도주의 경우 샤도네(Chardonnay), 셰닌 블랑(Chenin Blanc), 리즐링 (Riesling), 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 그리고 세미용(Semillon)고, 적포도주를 만드는 포도로는 카버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 멜로 (Merlot), 피노 누아 (Pinot Noir), 시라 (Syrah)가 꼽힌다.
아래는 각 포도 품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카버네 소비뇽 abernet Sauvignon

적포도주 중 가장 클래식으로 꼽히는 것이 카버네 소비뇽이다. 보통 와인을 숙성시킬 때 태닌 (tannin)의 양에 따라 와인을 얼마나 숙성시킬 수 있는지가 판가름 나는데, 카버네 소비뇽의 경우 풍부한 태닌 때문에 오랜기간 숙성시킬 수 있는 와인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장시간 숙성되어 태닌의 맛이 부드러워진 카버네 소비뇽은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카버네에서는 블랙베리, 민트, 블랙 카런트 (currant), 자두, 삼나무, 가죽 등의 향을 맡을 수 있고, 매우 깊고 그윽한 여러 종류의 맛을 한번에 즐길 수 있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적포도주가 카버네 소비뇽을 주원료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메독 (Medoc), 마고 (Margaux), 푸이악 (Pauillac), 생줄리앙 (St.-Julien) 등의 이름이 붙은 카버네 소비뇽 블렌드 와인들은 예로부터 세계 최고로 꼽히고 있다.
한편, 캘리포니아, 아르헨티나, 칠레, 호주,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높은 수준의 훌륭한 카버네 소비뇽이 생산된다.

■멜로 Merlot

눈을 가리고 맛을 보았을 때, 멜로는 카버네 소비뇽과 매우 비슷해서 많이 헷갈리는 와인이다. 하지만 자꾸 마시다보면 카버네 소비뇽보다 좀 더 부드럽고 과일 향이 강하며 풍만한 맛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멜로는 99% 멜로로 만들어지는 포메롤 (Pomerol)의 샤토 페트루스 (Chateau Petrus) 만 빼고는, 보르도 지방에서는 주로 카버네와 혼합된다.
하지만 태닌의 맛이 덜 느껴져서 쉽게 마실 수 있다는 이유로 점점 더 멜로의 인기가 높아감에 따라, 캘리포니아, 칠레,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멜로 수확량이 매해 늘고 있으며, 멜로를 주 원료로 빚어진 와인도 그 맛이 점점 더 훌륭해지고 있다.


■시라 Syrah

시라는 가장 남성적인 와인으로 꼽힌다. 거칠고 꾸밈없지만, 한편 매우 격조 높고 우아하게 느껴지는 와인이다. 시라로 만든 와인 중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와인은 론 (Rhone) 지방에서 생산되는데, 북부 론에서는 에르미타지 (Hermitage) 와 코트-로티 (Cote-Rotie) 에서 시라만 사용한 와인을 만들며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론의 남부에서는 샤토뇌프 뒤 팝 (Cha teauneuf-du-Pape) 등지에서 그라나쉬 (Grenache) 등 여러가지 포도를 혼합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시라는 또한 호주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적포도주로 꼽히는데, 약간 스펠링이 바뀌어서 쉬라즈 (Shiraz)로 표기된다.

■피노 누아 Pinot Noir

피노 누아에서는 흙내음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로맨틱한 와인으로 피노 누아를 꼽는데, 비단같이 부드럽게 혀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그 이유이겠지만, 강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자극하는 맛과 동시에 코로 느껴지는 흙내음이 아마도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좋은 피노 누아에서는 체리, 자두, 젖은 땅의 흙, 버섯, 삼나무, 시가, 초컬릿 등의 향을 맛을 수 있다. 피노 누아의 색은 카버네 소비뇽, 멜로, 시라 등의 적포도주보다 연하며, 태닌 역시 훨씬 덜하다. 불란서 부르고뉴 지방의 적포도주는 보졸레를 제외하고는 거의 피노 누아가 그 주원료로 쓰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은 보르도 지방의 적포도주들이지만, 가장 비싼 와인은 부르고뉴 지방의 적포도주이다. 가장 기르기 까다롭다는 피노 누아로 만들어지는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주의 양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노 누아는 또한 샴페인의 주 원료로 쓰인다. 붉은 포도이지만 껍질까지 함께 프로세스 하지 않기 때문에 백포도주인 샴페인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어낸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카네로스 (Carneros) 지방의 피노 누아가 가장 유명하며, 오리건 주 또한 또 하나의 부르고뉴로 꼽히며 훌륭한 피노 누아를 생산해내고 있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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