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게 이렇습니다 이래서 ‘한’복이라 부르나?

2003-01-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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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선교학 수업 중에 세계의 여러 민족의 문화차이와 종족들간의 문화차이를 좀더 실감나게 배우기 위해 타 문화권에서 온 학생들이 자기나라 고유 의상을 입고 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였다. 세네갈에서 온 흑인 남학생은 서아프리카 특유의 전통의상을 입었고, 인도에서 온 여학생은 사리를 입었고, 한인 여학생인 K는 한복을 입고 왔다.

블루진과 티셔츠 차림의 미국인 학생들은 고유 의상을 입고 온 급우들의 옷을 만져 보며 이런 저런 질문을 하였다. 사리를 입은 인도 학생에게 한 미국인 학생이 사리를 만지면서 참으로 편안하게 보이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 인도 여자는 아주 편안하다며 일상 시에 집에서도 자주 입는다면서 학교에도 입고 왔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학생들은 빨강 치마와 노랑저고리를 입은 K한테로 가서 한복의 예쁜 색상과 디자인에 감탄하며 옷을 만졌다. 옷을 만지던 한 여학생이 천이 의외로 빳빳하다고 신기해하며 K에게 편안하냐고 물었다. 인형처럼 경직된 모습을 하고 있던 K는 고개를 흔들면서 불편하여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너무 불편하여 옷을 가방에 넣어와 수업이 시작 직전에 갈아입었다면서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마자 갈아입겠다고 하였다.


K에게 뒤로 돌아 보라, 앞으로 걸어가 보라하며 옷 속에 갇히어 울상이 되어 로봇처럼 움직이고 있는 K를 가운데 놓고 학생들은 한마디씩 하였다. 여자들을 속박하기 위하여 남자들이 이 옷을 고의적으로 불편하게 디자인하였나보다, 어떻게 한국 여자들이 이런 불편한 옷을 입고 생활하는가 하고 한마디씩 하였다. 한복 속에 갇히어 쩔쩔매고 있는 K를 동정하며 나는 위로하는 말투로 “아하, 그래서 이 옷을 ‘한’복이라고 부르나 보다. ‘한’이 많은 사람들이 입는 옷이니까”하고 말하였다.

내 농담이 그녀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하였는데, 갑자기 그녀는 웃음을 중단하였다. 한복이 그녀를 너무 조여서 웃음을 터뜨리지 못하고 그녀는 헉헉거리면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으로 소리를 절제하며 웃었다. 한복을 갈아입기 위해 옆방으로 가는 K를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이 많은 사람들이라 한국 사람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한복이 입는 데만 불편한게 아니라 또 다른 이유에서 불편을 주었다는 것을 안다. 아내의 어머니 세대만 하여도 여자들은 이처럼 불편한 옷을 입고 한복을 세탁하기 위해서 옷을 조각조각 뜯어서 빨고, 다림질 대신에 다듬이질을 하여 다시 옷을 만드는 수고를 반복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에 한국일보 칼럼니스트가 쓴 글에서 한국 사람들이 한이 많은 민족이라는 예를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한국 인기 연속극 ‘모래시계’ 주인공이 죽음 앞에서 공포를 극도로 절제하며 태연하려고 애쓰는 모습,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남의 눈을 인식하며 근엄한 자세로 자신을 다스리려하니 한이 많을 수밖에. 남 보기에는 지극히 아름다운 한복이지만 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불편한 옷, 그럼에도 그 불편을 미소로 다스리며 사는 한국사람들. 그래서 ‘한’복이라고 부르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한국인인 나의 아내가 은근히 ‘한’을 품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도 다 크고 생활 기반도 잡혀 단순하게 살면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데도 이따금 아내는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이상한지 한을 만들어 살려고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자기 동생이 사업확장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집을 저당 잡혀 돈을 빌려주자고 한다던가, 우리가 은퇴할 때쯤 되면 미국 정부가 파산하여 퇴직금이 없을지 모른다며 걱정하는 것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저녁식사로 콩나물을 씻고 있는 아내에게 예전에는 콩나물 끝을 하나 하나 잘라 다듬었는데 왜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물으며 옛날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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